"1300억달러로 부족해?"…브로드컴, 퀄컴 거절땐 적대적 M&A 나설 수도

입력 2017-11-07 19:04
수정 2017-11-08 05:25
'반도체칩 4위' 브로드컴, 3위 퀄컴에 인수 공식 제안

프리미엄 붙여 주당 70달러
250억달러 부채까지 떠안기로
성사땐 IT업계 최대규모 M&A

브로드컴, 사전 논의 없이 제안
퀄컴은 "인수가 낮다" 거절할 듯
2018년 3월 주총서 표대결 할 수도


[ 추가영 기자 ] 싱가포르계 통신칩 회사 브로드컴이 ‘스마트폰칩 강자’ 퀄컴에 1300억달러(약 144조원) 규모의 인수 제안을 했다. 반도체업계는 물론 정보기술(IT)업계 인수합병(M&A) 사상 최고가다. 하지만 퀄컴이 ‘요청하지 않은(unsolicited)’ 브로드컴의 인수 제안을 거절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브로드컴의 인수로 애플과의 소송전, NXP반도체 인수 등 퀄컴이 직면한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저평가된 퀄컴의 현재 주가 때문에 인수 가격도 낮게 책정됐다는 평가다.


이에 브로드컴이 내년 3월 퀄컴 주주총회에서 기존 이사를 축출하고 새로운 이사를 선임하는 적대적 M&A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퀄컴, “인수 가격 낮다”…거절할 듯

세계 4위 반도체칩 회사인 브로드컴은 3위 퀄컴에 주당 70달러에 지분 인수를 공식 제안했다. 주당 현금으로 60달러, 브로드컴 주식으로 10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이다. 지난 2일 퀄컴 종가(54.84달러)에 28% 프리미엄을 얹었다. 부채를 포함해 1300억달러 규모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싱가포르 아바고 테크놀로지가 37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인텔 삼성전자 퀄컴에 이어 업계 4위(지난해 매출 기준)에 올랐다. 애플과 특허료 분쟁 등으로 퀄컴이 위기에 처한 틈을 타서 몸집을 키우려는 복안이다. 무선인터넷(와이파이) 등 통신 반도체시장 강자인 브로드컴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특허를 다수 보유한 퀄컴을 인수하면 이 둘을 통합한 ‘원칩’을 내놓는 등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퀄컴이 인수를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FT는 익명의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퀄컴이 브로드컴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퀄컴은 “이사회가 브로드컴의 제안을 검토 중”이란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인수 가격이 기대에 못 미쳐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중국·대만 규제당국이 독과점 문제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애플이 소송을 제기하는 등 특허료 분쟁이 퀄컴 주가를 끌어내렸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알젤로 지노 CFRA리서치 애널리스트는 “퀄컴 주가는 애플과의 소송전 등을 이유로 평가절하됐다”며 “퀄컴이 브로드컴의 인수 제안을 거절해도 놀랍지 않다”고 평가했다.

◆적대적 M&A 추진 가능성도

퀄컴 이사회가 이번 인수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브로드컴이 M&A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브로드컴의 인수 제안이 적대적 M&A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브로드컴이 공식적으로 인수 제안을 하기 전 퀄컴과 사전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주친화적인 퀄컴의 지배구조가 이 같은 적대적 M&A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브로드컴이 퀄컴과 상호 합의를 통해 절차를 따르는 대신 자사에 우호적인 인사를 퀄컴 이사회에 앉히고 내년 3월 열리는 퀄컴 주총에서 위임장 대결을 펼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주주들이 이번 합병을 받아들일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면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퀄컴을 인수해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리고 애플과의 소송전과 NXP반도체 인수 등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퀄컴 주주들을 설득하겠단 전략이다.

◆브로드컴 ‘소방수’ 역할 할까

월가는 브로드컴의 인수 제안을 퀄컴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퀄컴이 애플과의 소송이나 NXP반도체 인수 등 급한 불을 스스로 끌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브로드컴이 애플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이 퀄컴과 애플 간 소송전을 해결할 만큼 위력을 갖고 있진 않은 데다 퀄컴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아이폰에 공급하는 스마트폰칩 특허료를 깎아주는 ‘고육지책’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브로드컴이 이번 인수로 부담해야 하는 부채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너무 위험한 베팅’이란 의견도 나왔다. 인수가 성사되면 브로드컴은 1300억달러의 인수금액 중 900억달러를 현금으로 조달해야 한다. 이에 따라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성사되면 합작사가 부담해야 하는 부채 규모가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