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알권리' 무시하는 전문의약품 광고 규제

입력 2017-11-06 18:26
새로 나온 '유전자 치료제' 정보 알리는 것도 불법

세계 첫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병원 홈피서 광고하면 '약사법 위반'

식약처 "약품 오남용 방지위해 전문의약품 규제는 필수"

의료기관서 제공하는 정보 막아 부정확한 약정보 유통 우려
"환자 선택권 방해" 지적도


[ 이지현 기자 ] 일선 의료기관에서 전문의약품 광고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8일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정식 출시를 앞두고 일부 병원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유전자치료제 시술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 것이 발단이다. 전문의약품은 인터넷 등에서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 의약품 광고 규제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유전자치료제를 쓸 수 있는 의료기관은 국내 75개 병원에 불과한데 이들 의료기관이 치료 가능 시설이라고 알리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환자 알권리를 훼손하는 낡은 규제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의약품 광고 민원 잇따라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척추·관절병원 등의 관할 보건소에 관절염치료제 인보사 광고가 규정을 어겼다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이들 의료기관이 약사법을 어기고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인보사를 홍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상당수 병원이 관할 보건소에 소명 자료를 제출했다”며 “많은 환자가 새 치료제의 장점과 단점을 알고 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조치였지만 약사법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안내문을 바로 삭제했다”고 했다.

코오롱생명과학 자회사인 티슈진이 개발한 인보사는 항염증 작용을 하는 ‘TGF-β1 유전자’가 포함된 세계 첫 골관절염 세포 유전자 치료제다.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신약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질병관리본부에 유전자치료 기관으로 신고한 의료기관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들은 해당 병원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서도 인보사 치료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어렵다. 전문의약품인 인보사 치료를 할 수 있다고 알리는 것이 약사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를 통해 유전자치료 기관을 확인할 수 있지만 검색 과정이 복잡한 데다 실시간 정보도 반영되지 않는다. 지난달 말 기준 신고 기관은 75곳이지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기관은 60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유전자치료를 원하는 환자는 병원을 직접 찾아가 상담받아야만 치료 가능 여부를 알 수 있다. 병원 관계자는 “인보사뿐 아니라 줄기세포 치료제인 메디포스트의 카티스템도 치료 가능 병원이라는 것을 알리면 약사법 위반”이라며 “약 이름을 알고 연락해오는 환자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환자 알권리 훼손 vs 오남용 위험

현행 약사법에 따라 감염병 예방 백신을 제외한 전문의약품 광고는 의사 약사 등을 대상으로 한 전문지, 학술정보를 게시하는 전문매체에만 할 수 있다. 병원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약 정보를 게시하는 것은 금지된다. 병원에 홍보 전단을 두거나 입간판 등을 세우는 것도 불법이다. 전문의약품은 의사와 약사가 선택·처방해야 하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정보를 알리는 것을 금지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국무조정실은 신산업투자위원회 개선과제 120건에 ‘전문의약품 대중광고 허용’ 안건을 포함했지만 민간협의체에서 가이드라인만 마련해 발표하는 수준으로 방향을 바꿨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문의약품 광고를 폭넓게 허용하면 의약품 오남용이 심해진다는 우려가 있다”며 “전문의약품 대중광고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컸다”고 설명했다.

제약업계와 일부 의료기관은 전문의약품 광고를 폭넓게 금지한 약사법이 환자 알권리를 훼손한다고 지적한다.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문의약품에 대한 정보가 오가고 있는데 의료기관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어 부정확한 정보가 양산되고 유통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 뉴질랜드 등은 전문의약품 광고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환자가 처방받은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다. 업계 관계자는 “전문의약품 정보를 폭넓게 허용하면 약 선택 주도권을 환자가 갖게 된다”며 “의사 약사 등이 반대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의 의약품 선택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라도 전문의약품 홍보 범위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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