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영국 리처드 해밀턴 '연속적 강박'전
리처드 해밀턴은 누구
1950년대 앤디 워홀 등에 앞서 소비문화 이미지 미술에 활용
영국 팝아트 운동 이끈 선구자
아시아 지역 첫 전시회
내년 1월21일까지 과천관서
자본주의 사회 특징 간파한 회화·드로잉 등 90점 걸려
[ 김경갑 기자 ]
2차 세계대전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1950년대 중반. 당시 30대 영국 청년 리처드 해밀턴은 전후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며 대량생산과 대중문화를 미술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오디오·TV·토스트기계·신문·속옷 광고를 미술 소재로 활용하며 반복과 과잉이 특징인 소비문화의 이면을 날카롭게 직시했다. 1956년 낯선 그림 ‘도대체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 있게 만드는가?’를 발표한 그는 독창성과 유일성을 신봉해온 엘리트 미술에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렸다. 미술 평론가 로런스 앨러웨이도 ‘팝아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전후 대중소비시대에 걸맞은 미술이 나타났다고 격찬했다.
미국의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에 앞서 대중적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팝아트의 아버지’ 해밀턴(1922~2011). 지난 3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막이 오른 ‘리처드 해밀턴-연속적 강박’전은 살아있을 때 이미 전설이 된 거장의 삶과 예술을 꼼꼼하게 되짚는 자리다.
2017~2018 한국·영국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자화상부터 컴퓨터 합성풍경 연작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와 미디어가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미지들을 집요하게 탐구한 회화, 드로잉, 판화 90여 점이 내걸렸다.
1967년 작 ‘징벌하는 런던’은 록 음악과 약물 복용, 학생운동, 히피 문화가 판치는 1960년대 후반 서구사회의 명암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민트색 양복을 입은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유명 화상 로버트 프레이저와 함께 불법 약물 소지죄로 수갑 찬 모습을 포착한 이미지를 활용한 게 흥미롭다.
팝아트 작가로는 드물게 정치적 문제에 적극 관심을 보인 작품도 있다. 북아일랜드 감옥에 수감돼 있는 죄수 보비 샌즈를 예수처럼 형상화한 ‘시민’이 그런 작품이다. 아일랜드 공화주의자 죄수 이미지를 사용해 부조리한 현실 정치를 꼬집었다.
해밀턴이 재료의 혁신을 꾀한 기념비적인 작품 ‘네 개의 자화상’도 한국 나들이를 했다. 폴라로이드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거기에 아크릴 컬러를 칠한 다음 디지털로 변환해 레이어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토스트 기계 상단의 상표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대체한 작품, 여배우 비키 더건의 사진을 활용한 작품, 공간의 역동성을 탐구한 작업 ‘일곱 개의 방’, 풍경화와 광고를 접목한 작품 등도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런던의 테이트갤러리 인근에서 자란 해밀턴은 1936년 전기부품 회사의 광고팀에서 근무하면서 야간에 웨스트민스터기술대와 세인트마틴예술학교를 다녔다. 스물여덟에 영국 현대미술협회 창립을 주도한 롤랜드 펜로즈의 주선으로 김펠 필스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주목받았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현대미술의 아버지 마르셀 뒤샹의 회고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대중 소비문화를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그는 1960년 팝아트 운동의 선구자, 이론가로 평가를 받아 ‘윌리엄 노머코플리재단상’을 받았다.
해밀턴은 생전에 “팝아트는 대중적이고 덧없으며 확장할 수 있고, 싼 가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젊고 위트가 있으며 섹시하고 매력적인 큰 사업”이란 말을 남겼다. 대량생산, 복제의 이미지를 미술에 차용한 그는 자본주의사회 특징을 간파하고 예술로 표현할 수 있었던 혁신가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말을 전적으로 실천한 사람은 해밀턴이 아니라 워홀이었다. 워홀은 작업실을 ‘팩토리’라 부르면서 작품을 대량생산해 미술을 큰 비즈니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시는 내년 1월21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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