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임박해서야 정부에 쓴소리 쏟아내는 중국 중앙은행장

입력 2017-11-06 14:33
수정 2017-11-06 15:45
강동균의 차이나톡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저우샤오촨(周小川) 행장이 연일 중국 금융시장 위험을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급증하는 국유기업 부채와 금융시장의 거품, 국제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규제 등으로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저우 행장은 지난 4일 인민은행 홈페이지에 올린 ‘구조적 금융위험 방지를 위한 마지노선 사수’라는 제목의 글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 금융상황은 좋은 편이지만 금융위험 발생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기업의 막대한 부채 △부실 대출 증가로 인한 금융기관의 신용위기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그림자금융을 3대 위험 요소로 꼽았습니다.

저우 행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고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또 “외환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외국계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완화 등 시장 개방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는 시장이 자원 배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고 당국의 개입에 따른 왜곡 효과를 줄여야 한다”며 “금융당국 간의 역할 조정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우 총재는 지난달 1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중국은 경제를 더 개방하고, 외환 거래 시스템을 정비하고, 당국의 외환 시장 개입을 줄여야 한다”며 “어떤 국가도 엄격한 외환 통제를 통해 시장 개방을 이뤄낼 수 없다. 개혁을 지체하면 우리는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달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기간 중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중국은 기업 채무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가계부채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민스키 모멘트(Minsky Moment·급격한 부채 증가 이후 나타나는 금융시스템 충격)’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막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금융업계와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같은 저우 행장의 발언을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재임 기간 중에는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하지 않다가 물러나는 시점이 임박해서야 ‘입바른’ 얘기를 했다는 것이지요.

2002년 3월 임기 5년의 인민은행장에 취임한 저우 행장은 내년 3월 퇴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15년간 재임하게 돼 중국은 물론 세계 중앙은행장 중 최장 재임 기간을 기록하게 됩니다. 그동안 인민은행장은 3연임을 할 수 없는 게 관례였지만 저우 행장은 위안화 가치를 안정시켜 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한 점 등을 인정받아 2102년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고정환율제 폐지, 국유은행 기업공개(IPO) 등 중국 금융시장 개혁 조치들을 이뤄내기도 했지만 2015년 상하이증시 폭락으로 중국 금융시장의 불안전성이 높아지자 저우 행장은 정부의 눈치를 보며 시장 개방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가 시장에 했던 약속 중 상당부분이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재임 중에는 정부 정책에 대해 이렇다할 쓴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다가 퇴임을 앞두고서야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마냥 좋아보이진 않는다”고 꼬집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정부 고위 관료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는 발언을 하지 못하다가 퇴임을 앞두거나 물러난 뒤에야 정부 정책을 거세게 비판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모두 고위 공무원들이 자리를 지키는 동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인가 봅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