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감몰아주기에 '세금 폭탄' 안기나

입력 2017-11-05 17:40
기재부, 과세 강화 추진
주식가치 상승분에 증여세
중소·중견기업 특례도 폐지


[ 오형주 기자 ] 정부가 복지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감몰아주기’ 과세(계열사 간 거래 비중이 클 경우 대주주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것)를 대폭 강화한다. 일감몰아주기에 따른 주식가치 상승분에도 증여세를 물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특례도 폐지한다. ‘이중 과세’ 등의 문제가 있는 데다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 방향과도 상충돼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5일 한국경제신문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에게서 입수한 ‘일감몰아주기 과세의 실효성 제고 등 개선방안 연구용역’ 문건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하는 일감몰아주기 과세 강화 작업에 들어갔다.

기재부가 이전오 성균관대 교수팀에 맡긴 연구용역은 크게 두 가지다. 일감몰아주기에 따른 주가 상승분 과세가 첫 번째다. 현재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일감몰아주기로 주가가 상승해 대주주가 얻은 평가차익만큼 증여세로 더 물리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소·중견기업 과세특례 폐지다. 정부는 기업인의 사기 저하 등을 우려해 2014년부터 중소·중견기업에는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부담을 줄여왔다. 하지만 기재부는 과세 사각지대가 많다고 보고 특례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말께 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조세·재정개혁특위’에 과세 강화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 같은 방안이 도입되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부담은 최대 열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추산이다.


일감몰아주기 '징벌적 과세' 강화…"주가상승 반영 땐 세금 10배 급증"

복지재원 마련 위해 일감몰아주기 과세 확대
'미실현 이익에 과세' 논란 또 불거질 듯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과세 특례 폐지는
'중소기업 정부' 표방한 정책 기조와 상충

정부는 그동안 불공정거래 시각에서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해왔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과징금을 물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세법상 증여세를 물리는 부담은 가급적 줄여왔다. 투자를 위축시키고 기업인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일감몰아주기 과세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세 부담을 완화하는 각종 특례를 없애는 한편 주식가치 상승분에 증여세 부과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각종 복지지출이 늘어나는 데 따른 재원 확보 차원이지만 ‘중소기업 정부’를 표방한 정부 기조와 상반되는 데다 투자 위축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기업에 대한 징벌적 과세를 위해 무리하게 주식가치 상승분에 증여세를 물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중소·중견기업 특례 손본다”

일감몰아주기 과세는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이 연매출의 30%(대기업 기준)를 넘는 수혜법인(일감을 받은 기업)의 지배주주나 친인척 중 일정 지분율 초과 보유자에게 세후 영업이익의 일부에 대한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정부는 시행 2년째인 2013년 중소·중견기업의 과세요건을 일부 완화했다. 일감몰아주기 중 정상거래 범위를 늘려 세 부담을 줄여준 방식이다. 과세 완화 이후 중소기업 지배주주 중 과세대상 인원은 2013년 7838명에서 올해 1012명까지 줄어들었다.

경제개혁연구소 등 일부 시민단체 사이에선 “중소기업이라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적 대물림하는 경영 형태는 규제해야 마땅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런 시각은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등 현 정부 경제팀으로 고스란히 계승됐다.

정부는 지난 8월 제출한 ‘문재인 정부 첫 세법개정안’을 통해 중견기업의 정상거래비율 공제 등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중견기업에 대한 과세를 일부 강화하기로 했다.

이번 연구용역에서는 아예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특례를 없애는 방안까지 검토할 방침이다. 연구계획서는 “다양한 공제규정으로 실효세율이 전무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기업규모별 지배주주의 실효세율을 자세히 들여다본 뒤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 폐지까지 포함해 공제 축소 순서와 방향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소·중견기업의 과세 강화는 자칫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육성을 표방한 현 정부 정책기조와 모순된다는 비판도 있다.

◆주식가치 상승분 과세 ‘유력’

정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주식가치 상승분에 근거한 일감몰아주기 과세도 추진하기로 했다. 일감몰아주기로 얻는 이익은 결국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근거다. 사업연도 1년간 시가총액 변화(주가 상승분)에다 내부거래비율에서 정상거래비율을 뺀 수치를 곱해 지배주주의 과세 대상액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 방안은 2011년에도 학계 등에서 주장이 제기돼 법제화가 논의된 적이 있다. 당시 기재부는 공청회를 여는 등 법제화 여부를 검토했지만 △일감몰아주기의 주가 상승 기여분 산정이 어렵고 △미실현 이익에 대한 무리한 과세며 △이중 과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하지 않았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가 상승은 경영진의 노력 등 여러 요인에 좌우되는데 일감몰아주기 기여분만 떼내 측정하기 힘든 데다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이상 측정할 수 없는 미실현이익으로 과세 대상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엔 주식가치 상승분을 기초로 한 과세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재부가 용역연구를 맡긴 이전오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1년 공청회에서 주식가치 상승분 과세에 찬성 의견을 내놓은 인물이다.

기재부는 연말까지 용역결과를 받아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을 논의할 ‘조세·재정개혁 특위’에 제출한 뒤 내년 세법개정안에 반영하는 것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은 “불공정한 일감몰아주기에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징세를 해 재원마련의 방법으로 삼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며 “미실현 이익에 징벌적 과세를 강화한다면 ‘소득 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조세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