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CEO & Issue focus] 사이먼 모트램 라파 CEO, 비싼 자전거 타며 싼 옷 입는 문화 '불만'

입력 2017-11-02 17:06
수정 2018-08-16 17:22
직접 옷 만들어 입고 싶어 창업
유니폼을 감성 패션으로 끌어 올려


[ 박상익 기자 ] 학생 통학용이나 어린이 놀이용으로만 여겨졌던 자전거 타기는 이제 남녀노소 불문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주말에 한강 자전거도로로 나서면 로드사이클, 산악자전거(MTB) 등 각양각색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자전거를 탈 때 적절한 복장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은 희박했다. 그러나 수백만원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복장에도 신경쓰면서 자전거 의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축구와 야구 같은 스포츠는 정해진 유니폼을 입어야 하지만 사이클링은 프로가 아닌 이상 자유롭게 자신의 패션 감각을 뽐낼 수 있다.

영국에서 탄생한 자전거 의류 브랜드 라파(rapha)는 옷이 아니라 감성을 입는다는 브랜드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자전거에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소비자 덕분에 라파는 매년 성장하고 있다. 사이클링 웨어의 개념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라파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사이먼 모트램(51)이 이끌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옷 입느니…”

2004년 라파를 창업하기 전까지 모트램은 샤넬, 애스턴마틴 등과 일하는 유명 브랜드 컨설턴트였다. 누구보다 소비자 욕구를 잘 알고 있던 그는 자전거 동호인들이 입는 옷에 불만이 많았다. 자신도 주말마다 자전거 타기를 즐겼는데 각종 기업 로고가 붙어 있는 폴리에스터 재질의 의류를 싫어했다. 유럽 장인들이 만드는 자전거들은 품질이 뛰어난 데 비해 의류나 기타 액세서리들은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 모든 것이 즐거워야하는 데 왜 몸에 잘 맞지도 않고 품질이 떨어지는 옷을 입어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었다”고 회고했다.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새로운 의류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모트램은 경제력이 있는 30~40대는 비싼 자전거를 타는 만큼 관련 상품에도 돈을 쓸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지인과 투자자들로부터 14만파운드(약 2억원)를 모아 회사를 차렸다.

◆클래식 디자인에 동호인 매료

라파는 사람들이 알고 있던 자전거 의류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프로 선수 유니폼과 같은 디자인 옷을 입는 것이 유행이었다. 좋아하는 프로팀 유니폼을 사서 입는 것도 좋지만 각종 기업 로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모트램은 후자의 욕구에 집중한 디자인을 내놨다.

라파의 자전거 의류를 접할 때 가장 먼저 받는 인상은 단순함이다. 검정, 노랑, 분홍, 파랑 등을 기본색으로 삼아 아예 한 가지 색으로만 옷을 만들거나 다른 색을 쓰더라도 두 가지 넘게 쓰지 않는다. 가령 남색이나 갈색 바탕 상의(저지)에는 흰색과 분홍색 줄을 가슴에 배치하는 식이다.

이런 라파 특유의 디자인은 1950년대 사이클링 웨어에서 영감을 받았다. 왼쪽 팔에 띠 모양을 두른 특유의 디자인은 이제 라파의 상징이 됐다. 요란한 디자인에 지친 소비자들은 라파의 단순함에 열광했다. 여기에 울섬유를 사용해 몸에 잘 맞는다는 입소문이 동호인 사이에 퍼졌다. 기존 자전거 의류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노랑이나 분홍색도 거부감 없이 소화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 소비자들의 선택폭을 넓혔다.

다른 브랜드들도 이제 라파 영향을 받아 단순한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는 추세다. 사이클링 옷 한 벌 사는 데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50만원을 넘게 써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라파의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6200만파운드 매출에 전년보다 6.7% 증가한 450만파운드 이익을 냈다. 향후 3년 내 매출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역 자전거 문화 창조에 노력

라파는 디자인 외에도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을 갖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지역 자전거 커뮤니티 중심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라파는 이 오프라인 매장을 ‘라파 클럽하우스’라고 부른다. 서울 압구정동 가로수길에도 있는 라파 클럽하우스를 방문하면 라파 의류를 착용하고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자전거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라파는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소비자들끼리 함께 달릴 기회를 제공한다. 자전거 동호인 증가는 라파의 잠재 소비자들이 늘어난다는 뜻이기에 라파는 지역 사이클링 문화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라파의 독특한 소비자 문화 중 하나는 라파사이클링클럽(RCC)이다. 한국 기준으로 연회비 22만5000원을 낸 사람들은 클럽하우스에서 언제나 무료 커피와 간식을 즐길 수 있으며, RCC 회원 전용 상품을 구입할 권리를 갖는다. 자국은 물론 다른 나라 클럽하우스를 방문해 2만5000원 정도를 내면 독일 유명 브랜드 캐년의 자전거를 하루 종일 빌릴 수 있다. 옷값도 회비도 비싸지만 특별한 소수가 되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겐 매력적인 선택이다.

모트램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스포츠와 연결시키는 것”이라며 “고객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RZC 인수로 미국 시장에 도전

라파는 지난 8월 미국 RZC인베스트먼트에 지분 과반을 매각했다. 매각 금액은 2억2500만달러(약 25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RZC는 미국 월마트 창업자인 샘 월튼의 손자 톰과 스튜어트가 이끄는 사모투자회사다.

라파와 RZC가 손을 잡은 것은 미국 시장의 잠재력 때문이다. 미국도 사이클링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관련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WSJ는 지난해 미국 자전거 의류 시장 규모가 7억5700만달러(약 8600억원), 사이클링을 즐기는 인구는 255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했다. 이미 자전거산업에 투자하고 있던 RZC의 자금을 활용해 라파는 미국 내 클럽하우스 규모를 늘리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지분 매각 뒤에도 여전히 CEO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모트램은 “앞으로 미국 시장의 발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좀 더 사이클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마케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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