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발한 PEF의 회생 전략
캐프, 키코사태로 대규모 환손실
IMM이 인수해 경영 정상화
7년 만에 매각…투자금 회수 성공
[ 정영효 기자 ] ▶마켓인사이트 11월1일 오후 1시44분
최악의 상황에서 던진 승부수였다. 토종 사모펀드(PEF)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PE)의 송인준 대표와 김영호 부사장은 2012년 11월 ‘위험한’ 결단을 내렸다. 2년여 전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통해 투자한 자동차 와이퍼 제조업체 캐프가 파생상품 거래 손실로 자본잠식에 빠지자 ‘빚잔치’ 대신 출자전환을 통한 경영권 인수를 택한 것. 법정관리 기로에 섰던 캐프를 5년여에 걸쳐 정상화한 IMM PE는 지난달 30일 회사를 전자제품 제조업체 엔피디와 SG PE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IMM PE가 위기 속에서도 과감한 결단과 7년간의 인내, 구조조정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원금 대부분을 회수하게 됐다는 평가다.
◆‘골치덩어리’가 된 투자
IMM PE가 투자할 당시인 2010년 캐프는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순손실을 보는 회사였다. 2008년 영업이익 90억원에 순손실 90억원을 기록했고, 2009년에도 23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10억원의 적자를 봤다. 2008년부터 환헤지 파생상품인 키코와 스노볼에 투자했다 약 600억원의 손실을 입은 탓이다.
IMM PE는 ‘파생상품의 즉각 청산’을 투자조건으로 캐프의 BW, RCPS 등 주식형 채권 560억원어치와 구주 40억원어치 등 총 60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경영진이 투자를 유치한 뒤 말을 바꾸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환율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믿고 파생상품 계약을 유지했다가 400억원이 넘는 추가 손실을 봤다. 2011년 40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면서 캐프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결단을 내린 건 2012년 11월. 어차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투자 원금 대부분을 잃을 우려가 있는 상황이었다. IMM PE는 BW와 RCPS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해 캐프 지분 93%를 확보했다. 하지만 기존 경영진은 물리력을 동원해 IMM PE 인력의 회사 진입을 막았다. 주주총회 무효 소송도 제기했다. 긴 소송전은 ‘기존 경영진이 부실책임을 지고 남은 지분 7%와 경영권을 완전히 내려놓으라’는 판결을 받고서야 끝났다.
◆“먹튀 아니라 한 배 탄 동지”
2013년 5월에 이르러서야 IMM PE는 김영호 수석부사장 등 5명의 인력을 캐프 본사가 있는 경북 상주에 파견해 경영정상화에 나설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직 안정이었다. ‘한 배를 탄 동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단 한 명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급여를 올리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임직원의 사기가 회복되자 본격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나섰다. 파생상품이 일시적인 문제라면 건설과 자동차용품 도매사업 등 불필요한 사업 확장은 구조적인 문제였다. 사업타당성 평가를 거쳐 본업인 와이퍼 제조에만 주력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사업부는 모두 정리하고 베트남 공장을 새로 지어 와이퍼 제품군을 확대했다.
캐프는 연간 3800만 개의 와이퍼를 세계 40개국에 판매하는 세계 5위 업체로 성장했다. 북미시장에서는 레인X(사진)라는 브랜드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2년 603억원까지 떨어졌던 매출은 지난해 884억원으로 46.6% 늘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6억원에서 142억원으로 세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2013년 말 1883%까지 치솟았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201%로 떨어졌다.
7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IMM PE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전략적투자자(SI)에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다시 회사 주인이 바뀌는 데 따른 임직원과 거래처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서였다. 김대환 캐프 노조위원장은 “이윤만 추구하는 곳인 줄 알았던 PEF에 대한 이미지가 임금협상 등을 거치면서 차츰 바뀌었다”며 “회사를 정상화시킨 IMM PE에 고맙다”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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