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투자는 탈규제에 비례한다

입력 2017-10-31 18:03
BIS 비율이 2008년 금융위기 증폭시켰듯이
위험예방 규제가 위험 키우는 역설적 상황 빈발
4차산업혁명 분야라도 네거티브 규제로 바꿔야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


최근 정부 부처에서 주관한 혁신성장 간담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주로 벤처업계 및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였다. 많은 제언이 오갔는데 벤처업계 대표자들의 건의 사항은 크게 규제 완화, 벤처 정책자금의 확대 및 집중, 코스닥시장 정상화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반면 정책자금을 위탁운용하는 벤처투자업계는 평가 기간의 단기성으로 인한 투자의 왜곡, 정책자금의 관료화 등 주로 정책자금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발언은 규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 참석자 얘기를 들어보자. 수년간의 기술개발 끝에 가상체험기기를 개발해 체험점을 운영하고자 인가 신청을 했더니 관련 법이 없는 관계로 담당 부처에서 1년여 동안 인가가 표류했다. 적용할 법이 마땅이 없다 보니 미적미적하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법령을 찾은 것이 게임법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주저하다가 일단 시범사업장을 개점한 뒤 문제가 없는지, 심사 후에 정식 인가를 내줄지 결정하겠다고 했다. 영업장 하나에 수억원의 투자비가 소요되는 데다 인가가 불확실한 만큼 선뜻 투자하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벤처투자업계 역시 정책자금의 위탁운용을 받을 경우 평가를 1년 단위로 하다 보니 블라인드 투자의 특성인 J커브를 활용한 장기 투자가 쉽지 않고, 그렇다 보니 성장기에 있는 창업 7~10년차 벤처에 자금이 투입되지 않는 공동화 현상이 불거지게 돼 투자에 왜곡이 심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규제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규제다. 은행의 과도한 위험 추구를 제어하기 위해 위험가중 자기자본비율을 8%로 제어한 것이 바젤협약이다. 그러나 이후 미국의 저축대부조합 위기, 멕시코 페소위기, 아시아 외환위기,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부터 남유럽 은행들 위기까지 금융위기는 오히려 더 빈번해졌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에는 BIS 비율이 위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 BIS 비율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은행의 대차대조표, 특히 차변항목인 자산 구성이 비슷해지는 동조화 현상이 진행됐다. 이로 인해 한 은행이 부도 위험에 처해 보유 자산을 급매(fire sale)하게 돼 자산 가격이 폭락하면 같은 자산을 보유한 타 은행들의 대차대조표 역시 훼손된다. 거래 관계가 없는 금융회사 간에 부도 위험의 상관성이 높아져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같이 무너지는 현상이 일어난 결정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한 바젤규제가 오히려 위험을 증폭시킨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벤처캐피털을 오랫동안 운영한 한 업체 대표는 벤처산업에 과도한 규제 및 행정편의주의가 팽배한 원인으로 공무원에 대한 책임 문제를 거론했다. 규제를 풀어줬다가 문제가 될 경우 담당공무원이 징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에 생존편향(survivorship bias)이라는 이론이 있다. 전형적인 예가 ‘착한 돌고래 이론’이다. 배가 난파돼 선원이 표류하다 돌고래와 조우했다. 돌고래는 선원을 등에 태워 육지까지 데려다준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돌고래는 착한 동물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선원을 잡아먹은 돌고래에 대해서는 증언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무원 입장에서는 인허가를 내줬다가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징계를 피할 수 없다. 반대로 규제로 막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제거되기 때문에 아무런 후환이 없다. 역시 일종의 생존편향 현상이다.

혁신성장의 핵심은 투자 가능 집합을 넓혀 위험 대비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투자 가능 집합의 크기는 탈(脫)규제에 비례한다. 만약 ‘빈삼각은 두지마라’는 기존 바둑의 금기를 미리 입력했다면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혁신산업에 한해서라도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최소 비조치의견서라도 활성화해야 한다. 한 참석자 말이 귓가에 맴돈다. “만약 4차 산업혁명이 꽃을 피운다면 우리 경제에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kcm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