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안 되면 되게 하라" 기업가정신 '무장'

입력 2017-10-31 17:38
CEO 탐구

사업 재편 후 4차 산업혁명 전선으로 '돌격'

17년 만에 구원투수로 복귀
실적 악화로 사내 분위기 뒤숭숭
직원들 기 살리려 일일이 인사
故 최종건 창업주 동상에도 큰절

병영에서 인생을 배우다
1973년 해병대 258기로 입대
수평적 환경에 '진짜 세상' 경험
독한 훈련으로 강한 정신력 무장

"성장성·수익성에 초점 맞추자"
SK렌터카 기반의 '모빌리티'
SK매직 렌털사업 중심의 '홈케어'
신성장동력 앞세워 재도약 예고


[ 고재연 기자 ] 지난해 4월7일 서울 명동 SK네트웍스 본사 로비에 들어선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65)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이날은 최 회장이 SK그룹의 모태이자 선친인 최종건 창업주가 세운 회사의 대표로 복귀한 뒤 처음 출근한 날이었다.

SK네트웍스는 최종건 창업주가 1953년 설립한 선경직물이 모태다. 이후 (주)선경, SK상사, SK글로벌 등으로 사명이 바뀌었지만 SK그룹의 모태라는 상징에는 변함이 없다. 최 회장은 1997년까지 SK네트웍스의 전신인 (주)선경 부사장을 지낸 후 이날 17년 만에 회사로 돌아왔다. 그는 건물 1층으로 옮겨온 선친의 동상에 큰절을 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그룹의 모태인 SK네트웍스를 다시 반석 위에 올려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1층부터 18층까지 걸어서 회사의 모든 층을 돌았다. 500여 명의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새 출발을 격려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눔 DNA’

선경직물은 경기 수원시 평동에서 최종건 창업주가 일본인들이 세운 직물회사를 인수해 6·25전쟁 후 잿더미 속에서 재출범시킨 회사다. 당시 동대문시장에서 선경의 ‘닭표 안감’과 ‘봉황새 이불감’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기반을 잡았고, 1962년엔 국내 최초로 인조견직물을 홍콩에 수출하며 한국 섬유산업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최 회장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고 배운 것은 이런 ‘기업가 정신’만은 아니었다. 최종건 창업주는 끼니를 때우기도 힘든 시절 공장을 지어 동네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줬다. 전력 공급이 중단돼 공장 가동을 멈추는 날이면 공장 직원들을 불러모아 놓고 촛불을 켠 채 한글을 가르쳤다. 한글을 모르면 무시당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모친인 고(故) 노순애 여사는 쌀을 씻을 때마다 일정량을 따로 모아뒀다가 동네 어려운 주민에게 조용히 나눠주곤 했다. 최 회장의 조모인 고(故) 이동대 여사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배곯는 공장 직원들을 위해 누룽지를 만들었다.

이런 가풍에서 최 회장은 어린 시절부터 나눔과 교육의 의미를 자연스레 체득했다. 매년 그의 연말 일정이 봉사활동으로 꽉 들어차는 이유다. 연탄 배달, 쪽방촌 방문, 김장 행사 등 어느 행사를 가더라도 적당히 끝내는 적이 없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쪽방촌을 일일이 방문해 노인들의 손을 붙잡고, 연탄 배달도 직접 한다.

해병대 정신으로 무장

그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해병대’다. 1973년 대기업 오너가(家)의 자제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어린 시절 그는 지금과 달리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강원도 전방의 육군부대 입대를 앞두고 있던 그에게 아버지인 최종건 창업주가 “강한 정신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병대를 가는 게 좋겠다”고 권유한 것. 최 회장은 해병대 258기로 입대해 경기 김포시 2사단에서 근무했다. 군대는 철저하게 수평적인 곳이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빽’이 되지 못했다.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매일 밤 상사에게 맞으면서 ‘진짜 세상’을 경험했다.

지나고 보니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최종건 창업주의 정신과 ‘하면 된다’는 해병대 정신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잘되려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한데, 정신력을 키우는 데 해병대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믿음도 생겼다.

옛 SK유통, SKC 등 대표를 맡았던 곳에서 최소 한 번 이상 정신 재무장을 위해 직원들을 데리고 해병대 병영훈련 체험을 하게 된 이유다. 지난해 6월에는 SK네트웍스의 팀장급 이상 임직원 220여 명과 함께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을 찾았다. 글로벌 경기침체, 면세점 사업자 선정 탈락 등으로 수년간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직원들의 사기를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모빌리티’ ‘홈케어’로 사업구조 재편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뒤 최 회장은 사업구조 개편을 위해 강력한 ‘메스’를 들이댔다. SK네트웍스의 실적은 지난 5년간 내리막을 걸었다. 2012년 매출 27조9355억원, 영업이익 2516억원을 기록했던 회사는 지난해 매출 18조4574억원, 영업이익 167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최 회장은 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와중에 기존 사업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원점에서 다시 따져봤다. 성장성과 수익성 그리고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잣대로 삼았다.

정리는 과감했다. 패션사업을 현대백화점그룹에 매각하는 등 수익성이 떨어지는 적자 사업을 정리했다. 재승인에 실패한 면세점 사업에서는 철수했다. LPG사업을 SK가스에, 유류 도매 유통사업을 SK에너지에 양도했다. 이를 기반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생활가전 렌털업체인 동양매직 지분 100%를 6100억원에 인수해 SK매직으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워커힐호텔에도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최종건 창업주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인수하고 거주했던 워커힐호텔은 최 회장에게도 각별한 곳이다. 1977년부터 써온 ‘쉐라톤’ 브랜드를 떼내고 독자 경영에 나섰다. 50년 이상 축적한 호텔 운영 노하우가 있고, 워커힐의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 자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SK네트웍스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꿔놨다. 회사의 주력 사업은 기존의 유통(상사·정보통신)과 에너지마케팅에서 SK렌터카·스피드메이트 기반의 ‘모빌리티’와 SK매직의 생활가전 렌털사업을 중심으로 한 ‘홈케어’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SK그룹 내 ‘허브 컴퍼니’ 역할도 하게 됐다.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SK건설 등 계열사들이 내놓는 상품과 서비스가 결국 자동차(스마트카)와 집(스마트홈)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다. SK네트웍스가 SK텔레콤의 사물인터넷(IoT) 전용망 ‘로라(LoRa)’를 렌터카 사업에 적용해 차량 운행관리 서비스인 ‘스마트 링크’를 출시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IoT를 적용한 SK매직 제품을 SK텔레콤의 스마트홈 앱(응용프로그램)에 연동할 수도 있다. 고객들은 스마트홈 앱을 통해 집 밖에서도 전자기기를 작동하고, 집안의 공기 상태까지 점검하면서 건강관리 등 다양한 생활 밀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는 요즘 《딥 체인지 오어 슬로 데스(Deep Change or Slow Death)》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를 선택할 것이냐, 서서히 죽어갈 것이냐는 책 제목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치면서 열독하고 있다. AJ렌터카를 인수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기존의 것 외에 미래 비전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SK네트웍스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고,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 '아시아 기부 영웅'으로 선정…"나눔은 식사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사진)은 주변에서 “언제까지 나눔을 펼칠 생각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까지 밥을 먹을지 물어봐 달라”고 답하곤 한다. 그만큼 그에게 나눔은 일상이고 습관이며 ‘천행(天行)’과도 같다.

미국의 경영전문잡지 포브스는 최 회장을 ‘아시아의 기부 영웅’ 중 한 명으로 꼽았을 정도다. 지난 5월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공동모금회 최고액 기부 클럽인 ‘1000만달러 라운드테이블’ 회원이 됐다. 전 세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재단 등 32명의 개인과 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계공동모금회는 최 회장을 위해 ‘글로벌 필란트로피 어워드’를 만들어 수여하기도 했다. 고액 기부 등으로 세계공동모금회의 활동에 크게 공헌한 개인 후원자에게 주는 공로상이다. 최 회장은 개인 기부 활동의 불모지에 가까운 아시아에서 적극적으로 나눔 활동에 나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의 지원은 섬세하고 구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팬인 시리아 난민 소녀를 위해 소속사인 SM과 협업해 딱 한 사람만을 위한 엑소 인터뷰 동영상을 촬영했을 정도다. SK네트웍스 직원들은 동영상과 사인 CD 등의 선물을 들고 소녀가 있는 지역으로 날아가 전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나눔교육포럼을 발족해 회장을 맡고 있다. 기부, 자원봉사 등 자선 행위의 가치를 알려 이를 실천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아동과 청소년이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나눔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국내 주요 나눔교육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 나눔교육포털을 운영하고 있다.

▶최신원 회장 프로필

△1952년 경기 수원시 출생 △1971년 배문고 졸업 △1976년 경희대 경영학과 졸업 △1980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 입사 △1991년 선경그룹(SK그룹 전신) 경영기획실 상무 △1997년 SK유통 대표이사 부회장 △2000년 SKC 대표이사 회장 △2016년 SK네트웍스 회장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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