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칭과 경어법이 복잡한 한국어에서 잘 모르는 상대방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적잖은 부담입니다. 같은 이유로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여성 종업원을 부를 때는 ‘이모님’이라고 말을 건네고, 상점을 방문한 (주로 남성) 고객을 호칭할 때는 ‘사장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경우가 적지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장님’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경영하는 회사가 크건 작건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 도쿄에서 주민 10명 중 한 명이 실제 ‘사장님’인 지역이 있습니다. 도쿄상공리서치라는 회사가 2016년 12월 현재 일본 기업 데이터베이스에서 자영업 등 개인기업을 포함한 약 300만개의 기업 대표자(사장) 정보를 취합·분석한 결과(社長の住む街調査), 도쿄 23개구의 사장님 거주지역 정보가 파악된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주민 중 사장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미나토구(港?)였습니다. 무려 주민의 9.9%가 ‘사장님’이었습니다. 미나토구에 거주하는 분께는 사전 정보 없이 ‘사장님’이라고 불러도 그 분이 진짜로 ‘사장님’일 확률이 10% 정도 되는군요.
대략 24만여 명이 거주하는 미나토구는 도라노몽, 신바시 등 비즈니스 중심구와 아오야마, 아카사카 등 상업지역, 롯폰기 등 고급 유흥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오도메, 오다이바 등 대규모 신규 개발지역도 있어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가 나는 곳도 많습니다. 외무성, 후생노동성 등 관공서와 48개국의 대사관도 자리 잡고 있고, 주민의 10%가량은 외국인이라고도 합니다.
도쿄상공리서치는 이 지역에서 사장님 비율이 높은 이유로 아카사카, 롯폰기 등 고급주택지가 있고 시내 중심가여서 교통편이 좋은 점이 경영자들의 인기를 끈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미나토구와 함께 인구 대비 사장 비율이 높은 지역은 시부야구·치요다구(각각 8.62%), 쥬오구(6.51%) 등이었습니다.
비율이 아니라 실제 사장님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세타가야구(世田谷?)였습니다. 도쿄에 사는 사장님 수가 35만5175명인데 이중 세타가야구에만 3만8771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산겐자야, 지유가오카, 후타코타마가와 등 인기 상업·주거지역이 있고 녹지가 풍부한 점이 사장님의 거주지로 꼽힌 이유로 거론됐습니다. 세타가야구의 뒤는 미나토구(2만5124명)가 이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사장님들은 주로 어떤 기업을 경영하고 있었을까요. 업종별로 살펴보면 음식업·숙박업을 포함 서비스업이 12만5354명(35.2%)로 가장 많았습니다. 정보통신업 3만9351명(11.0%), 부동산업 3만8046명 (10.7%), 제조업 3만5609명 (10.0%), 소매업 3만5454명(9.9%), 도매 3만4824명(9.8%) 등의 순이었습니다.
한편 여담입니다만, 일본은 과거의 신분제적 전통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대를 잇는 장인 정신’이라는 것도 신분제적 전통 탓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신분상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기도 합니다. 그 결과인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주거지의 차이도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과거 일본에는 최하층 천민으로 분류되던 이른바 ‘부라쿠민(部落民)’거주 지역이 따로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신라시대 부터 조선시대 전기까지 존재했던 향·소·부곡(鄕所部曲)과 비슷한 곳이라고 합니다.
부라쿠민은 ‘더러움이 많은 직업’이라는 뜻의 ‘에타(穢多)’, 가축 도살·피혁 가공 등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메이지유신 이후 천민 폐지령이 내려졌지만 이들을 멸시하는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네요. 3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후손 중에는 요즘에도 결혼이나 취업 때 천민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거주지와 직업 연관성과 관련한 통계 자료를 접한 결과, 여전히 일본은 신분제적 전통이 한국 보다 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