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
성 차별은 남녀 모두의 문제
바꾸려면 즉각 행동 나서야
기술발전이 노동시장 파괴하지만
AI가 대체 못하는 창의인재는 프리미엄 대접 받을 것
[ 허란 기자 ]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56·사진)는 호주 역사상 첫 여성 총리다. ‘이민자·미혼·무신론자’라는 약점에도 정치권의 유리천장을 뚫었다. 다음달 1일 열리는 ‘글로벌 인재포럼 2017’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는 길라드 전 총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차별은 남녀 모두의 문제”라며 “바꾸려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자든 여자든 다음 세대 여성들이 덜 차별적인 환경에서 일하도록 힘쓸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 졸업장이 가치를 잃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학생들은 기술이 노동시장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 직업에 필요한 기술력을 갖춘 학생들은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다”며 인간의 지혜·창의성·상상력이 필요한 직업을 찾을 것을 조언했다.
▷정치권의 유리천장을 뚫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무신론자로서 호주 총리가 된 것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야심찬 여성에 대한 비호감도 감수해야 했죠. 여성 정치인은 심지어 옷차림이 판단 기준이 될 때도 있어요. 아이들이 있느냐도 중요하고요. 다행히 먼저 진출한 여성 선배들이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또 그다음에 나올 여성 리더들은 좀 더 편한 길을 갈 수 있을 거예요.”
▷성차별 문제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성차별은 남녀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 여성 정치인, 사업가, 장군, 회사원이 덜 차별적인 환경에서 일하도록 힘쓸 책임이 있어요. 바꾸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한국에선 대학 졸업장이 가치를 잃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노동시장의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기술혁신은 항상 노동시장을 파괴하거든요. 하지만 인간의 진짜 관심사는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이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혜, 창의력, 상상력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는 일은 항상 프리미엄을 받죠.”
▷그럼 학교 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요.
“‘학교 이후 교육’이 극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기술력을 갖춘 학생들은 유연하고 적응 능력이 있는 기업가, 민첩한 학습자가 될 수 있어요.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의 장점도 잘 활용해야 해요. 새로운 기술은 제2의 아이폰, 트위터, 스냅챗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과 가능성을 낳는 엄청난 고용 기회를 창출할 것입니다.”
▷기술혁신이 가져올 혜택 얘기를 해보죠.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기술 변화에 따른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직업 탐색에 필요한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해요.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의미 있는 21세기 교육을 제공할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기술 불평등과 격차를 줄이는 길입니다. 제가 ‘교육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의장을 맡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한국식 교육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육만큼 국가를 발전시키는 건 없습니다. 한국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매우 존경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한국이 이룬 진보와 업적을 부러워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교육을 보장하는 것이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유일한 전략은 아니지만 분명히 중요한 부분이죠.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면 신기술로 무장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답이에요. 그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열쇠입니다.”
▷정신건강 문제에 각별히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정신과 간호사였죠.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낡은 태도와 낙인이 당사자와 가족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직접 봤습니다. 총리로서 집행한 첫 예산에서 정신 질환을 조기에 치료하는 보건정책에 22억달러를 배정한 이유입니다. 더 이상 호주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우울증과 불안을 해소하고 자살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단체인 비욘드블루(beyondblue) 의장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과 임금 인상은 양립할 수 있을까요.
“호주는 강력한 최저임금 안전망을 확립한 나라 중 하나예요. 제가 부총리 시절에 ‘공정근로법(Fair Work Act)’이라는 걸 도입했는데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를 주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법입니다. 그럼에도 집권 기간 90만 개 일자리를 창출했어요.”
▷어떻게 가능했죠?
“미래 직업에 필요한 기술교육을 한 덕분이었어요. 고도로 숙련된 노동력은 탄력적이기 때문이죠. 우리의 목표는 세계 어디에서나 최고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숙련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 줄리아 길라드는 누구
'싱글·여성·무신론자' 딛고 호주 최초 여성총리 올라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사진)는 타고난 토론자다. 의회 대정부 질문에서 ‘파이터’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2012년 토니 애벗 자유당 대표를 겨냥한 ‘반(反)여성혐오’ 연설로 성차별 편견에 맞섰다는 평가와 함께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1961년 영국 웨일스 배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로 이민 갔다. 아버지는 정신병원 간호사였고, 어머니는 구세군 요양소에서 일하며 이민자로서 고단한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며 정치 입문을 위한 예비 훈련을 했다. 1986년 멜버른대를 졸업한 뒤 슬레이터&고든 로펌에서 노동분야 변호사로 일했다. 1990년 29세에 최연소로 첫 여성 파트너에 올랐다. 이때부터 노동당 공천을 노렸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1998년 랄로 지역에서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의회에 입성했다.
2007년 총선에서 케빈 러드 대표가 이끄는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첫 여성 부총리이자 교육고용부 장관으로 데뷔했다. 2010년 당대표에 도전해 첫 여성 총리가 됐지만 러드 전 대표와의 권력 암투로 정치 스캔들에 휩싸였다. 2013년 6월 당대표 경선에서 러드에게 패한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 현재 ‘교육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의장과 자살·우울증 예방에 힘쓰는 비영리단체 비욘드블루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줄리아 길라드 약력
△1961년 영국 웨일스 출생 △1966년 호주 애들레이드로 이민 △1983~1984년 호주학생연합 회장 △1986년 멜버른대 법학과 졸업 △1990년 슬레이터&고든 로펌 파트너 △1998년 노동당 하원의원 당선 △2007년 부총리 겸 교육고용부 장관 △2010~2013년 호주 총리 △2014년~ 교육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의장 △2017년~ 정신건강 관련 비영리단체 비욘드블루 의장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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