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대지정·집단지도체제' 불문율 깨고… 장기집권 기반 다진 '시황제'

입력 2017-10-25 18:57
시진핑 집권 2기 출범

시진핑의 신시대
(1) '1인체제' 강화

2027년 '7상8하'에 걸려
신임 상무위원 5명 모두 시진핑 후계자 될 수 없어

자신의 사상 '당헌'에 명기 마오쩌둥 이후 처음

측근 '시자쥔' 대거 임명…집단지도체제 '유명무실'
3연임 넘어 장기집권 관측도


[ 베이징=강동균 기자 ]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2기 최고지도부를 자신의 측근들로 채웠다. 25일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9기 1중전회)에서 새로 구성된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시 주석의 측근 그룹인 ‘시자쥔(習家軍)’ 인물들이 장악했다.

시자쥔은 시 주석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勛)의 고향이자 시 주석이 청년 시절 하방(下放·지식인을 노동현장으로 보냄)했던 지역인 산시성 출신과 시 주석이 푸젠성, 저장성, 상하이시에서 일할 때 부하로 근무한 이들이다.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와 후춘화 광둥성 당서기는 상무위원에 진입하지 못했다. 시 주석을 이을 후계자가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향한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진핑 측근 최고지도부 점령

새로 상무위원에 선출된 리잔수(栗戰書) 당 중앙비서실장(67)과 왕후닝(王寧) 당 중앙정책실장(62), 자오러지(趙樂際) 당 중앙조직부장(60)은 시 주석 측근으로 꼽힌다. 왕양(汪洋) 부총리(62)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권력 기반이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이지만 시 주석 충성파로 돌아섰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계열인 상하이방 출신인 한정(韓正) 상하이시 당서기(63)는 시 주석 눈에 들어 상무위원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부패척결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를 맡은 자오러지다. 시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던 왕치산 전 서기 후임이다. 그는 내년에 신설되는 국가감찰위원회 서기도 겸한다. 시 주석이 부패척결을 통해 집권 1기 권력 기반을 강화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열은 6위지만 사실상 시 주석에 이어 2인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오러지는 산시성 출신으로 시 주석과 고향이 같다. 칭하이성 성장과 당서기, 산시성 당서기를 거쳐 2013년 당 인사·조직 관리를 총괄하는 중앙조직부장에 발탁됐다.

리잔수는 1980년대 허베이성 재직 때 허베이성 정딩현 서기였던 시 주석과 인연을 맺었다. 헤이룽장성 성장, 구이저우성 당서기 등을 거쳐 당 중앙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시 주석의 국내 시찰과 해외 순방 등에 빠지지 않고 수행해왔다.

왕후닝은 시 주석의 ‘책사’로 불린다. 전날 공산당 당장(黨章·당헌)에 들어간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정리한 브레인이다. 장쩌민의 ‘3개 대표론’과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도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등 시 주석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주요 정책은 물론 연설문도 작성해왔다. 지방정부 수장이나 당서기 등의 경험이 없는데도 상무위원에 진출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왕양은 시 주석 집권 1기 통상정책과 빈곤대책 등을 맡아 추진하면서 시 주석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정은 시 주석이 상하이시 당서기로 있을 때 극진한 보좌와 업무 능력 등을 보인 데다 정치적 색채가 짙지 않아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산당 불문율 깨져

새로 선출된 상무위원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시 주석을 이을 후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엔 지도자 교체 원칙 중 하나로 ‘격대지정(隔代指定)’이란 불문율이 있다. 현재 지도자는 다음 지도자를 정할 수 없다. 대신 한 대(代)를 뛰어넘어 그다음 세대 지도자를 지정할 수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 후계 문제를 놓고 권력투쟁이 이어졌다. 그런 폐단을 끊기 위해 덩샤오핑은 1992년 장쩌민에게 권력을 넘기면서 당시 만 49세였던 후진타오를 다음 지도자로 지정했다. 미래 권력을 미리 낙점함으로써 기존 권력의 독재와 세습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시 주석은 후진타오가 아니라 장쩌민에 의해 세워졌다.

이런 관례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키운 후춘화 광둥성 당서기가 시 주석을 이을 차기 지도자로 이번에 상무위원에 진입했어야 한다. 후 서기가 아니더라도 50대 상무위원이 등장했어야 한다.

신임 상무위원 다섯 명은 후계자가 될 수 없다. 국가주석의 임기가 10년인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은 최고지도자로서 두 번째 임기를 맞는 2027년엔 모두 ‘7상8하(당 대회가 열리는 해에 만 68세 이상이면 정치국 위원 이상 간부가 될 수 없다)’ 규정에 걸리게 된다. 이번 당 대회에서 왕치산 전 서기도 이 규정을 넘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세웠던 불문율을 25년이 지나 시 주석이 깨버린 셈이다.

시 주석이 공산당의 불문율을 무력화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생전에 자신의 이름을 단 사상을 당장에 명기한 것은 마오쩌둥 이후 시 주석이 처음이다. 덩샤오핑의 이름을 딴 ‘덩샤오핑 이론’이 당장에 들어간 것도 그의 사후인 1997년이었다.

마오쩌둥 시절 권력 집중 폐해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 집단지도체제도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은 1982년 당장을 개정하면서 총서기 역시 다른 상무위원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규정해 협력과 견제를 통한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시자쥔이 상무위원을 장악해 시 주석 1인 체제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 주석이 국가주석 ‘10년 임기’ 규정을 무력화하고 3연임을 넘어 장기 집권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