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시작됐다"…조덕제 성추행 사건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

입력 2017-10-24 14:04

영화 촬영 중 조덕제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여배우 B씨 측이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표명했다.

B씨 측은 24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변호사회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B씨의 변호인 조인섭 변호사,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 정다솔 찍는페미 공동대표,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남배우A 사건 공동대책위는 취재진 앞에서 연대 발언을 했다. 백재호 운영위는 "촬영 영상에 담겨 있는 합의되지 않은 가해자의 폭력, 피해자의 상체를 노출시킨 행위만으로도 범죄다"라며 "상호 합의되지 않은 행위가 연기라는 명목의 업무상 행위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안병호 위원장은 "스태프들은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했고 가해자의 억울한 측면을 주요하게 이야기했다"며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의 목소리가 들리면 영화라는 오해를 벗고 잘 들어달라. 영화계 성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라고 현장 관계자들에게 당부했다.

정다솔 대표는 "이 사건은 앞으로 영화계를 바꿀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2심 재판 판결은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에 경종을 울릴 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에 영화계가 힘을 실어주고, 또 대중이 그 문제를 인식하는 변화가 이제 막 시작됐다"며 "이 재판의 유죄 판결은 영화계의 의미있는 선례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B씨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대신 A4용지 4장 가량의 편지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나는 경력 15년이 넘는 연기자다. 연기와 현실을 혼동할 만큼 미숙하지 않다. 돌발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도 할 수 있는 전문가다"라며 "그러나 촬영 과정에서 성폭력을 당하자 패닉에 빠져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는 피고인을 무고할 어떤 이유도 없다. 유명하진 않았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배우생활을 하고 있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인과의 사랑도 이어가고 가족과도 화목하게 지냈다"며 "그런 내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불안 속에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을 신고하고 30개월이 넘는 법정 싸움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또 그는 "촬영 현장에서 당한 성폭력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고했고 모든 것을 잃었다"며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자기 분야에서 쫓겨나는 분들에게 내가 희망이 되고 싶다"며 "나는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싸우려 한다"고 말했다.

앞서 여배우 B씨는 2015년 영화 촬영 중 상대 배우 조덕제가 사전 합의 없이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전치 2주의 찰과상을 입었다고 주장, 조덕제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신고했다.

이후 조덕제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지난 13일 열린 2심에서는 원심을 깨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한예진 한경닷컴 기자 geni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