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79)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입력 2017-10-23 09:01




거장으로 떠오른 일본계 영국작가

올해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미국 가수 밥 딜런에게 상을 안겨 충격을 주었던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이 유력시되었던 파울루 코엘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미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작가는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켄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82년에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데뷔하여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낸 작품이다. 19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상을 받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소설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로 제작되어 또 한 번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시구로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를 보내지 마》는 타임지에서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미국 도서협회 알렉스상, 독일 코리네상 등을 받았다. 복제 인간의 사랑과 슬픈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다.

감정의 힘을 담다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은 이시구로에게 2017년 노벨문학상을 안긴 스웨덴 한림원은 “감정의 거대한 힘이 담긴 소설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연결에서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감각 이면에 있는 심연을 드러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시구로는 30여년 동안 장편 7편, 단편집 1권을 출간했는데 그 가운데 《우리가 고아였을 때》를 소개한다.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어린 시절을 중국 상하이 외국인 공동구역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아편을 수입해 중국인들에게 파는 영국 기업 직원인데 반해 상하이 최고의 미인인 엄마는 아편 반대 캠페인을 벌인다. 복잡한 함수관계를 알 리 없는 크리스토퍼는 멋진 집에서 밝고 화사한 엄마와 행복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실종되고, 믿고 따르던 삼촌은 복잡한 장터에서 그의 손을 놓아 버린다. 기억을 되살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엄마도 사라지고 없다.

열 살 때 영국으로 가서 이모와 함께 살게 된 고아 소년, 그는 교육을 잘 받고 이모의 유산까지 받은 청년이 되었지만 마음은 늘 헛헛하다. 어릴 때 옆집의 아키라와 탐정놀이를 즐겨했던 크리스토퍼는 사설탐정이 되었고, 어려운 사건을 줄줄이 해결하면서 명성이 높아졌다. 부모의 미스터리한 실종사건을 해결할 각오로 틈틈이 자료를 모으며 상하이로 갈 계획을 세운다.

크리스토퍼가 어떤 모임에서 인상깊게 봤던 세라, 그녀도 고아로 자랐다. 그리고 또 한 명의 고아, 크리스토퍼가 입양한 제니퍼가 있다. 세 명의 고아가 보이는 성향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크리스토퍼는 명석한 사설탐정이지만 상하이에서 부모의 행방을 찾을 때 ‘무작정 돌진’하는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보인다. 세라는 ‘뭔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나이든 명사와 결혼하지만 파국을 맞는다. 사고로 부모를 한순간에 잃은 제니퍼는 어린이답지 않게 처연하고 침착하다.

삼촌이 하는 말

크리스토퍼의 직업이 탐정인 만큼 부모를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고, 마지막 부분에 대 반전이 일어난다. 그를 유기했던 삼촌이 홀연히 나타나 ‘팩트 폭격’을 퍼붓자 경악하는 크리스토퍼, ‘엄청난 사실’은 공분하기에 충분한 내용이니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1930년대의 어지러운 국제정세와 함께 가족의 중요성,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소설은 격조 높은 어조로 차분히 진행되지만 ‘불확실한 기억’이라는 장치로 인해 묘한 분위기가 종종 연출된다. 그러다가 폭풍 같은 결말에 이르면 전율과 충격으로 한동안 아득하게 된다. 크리스토퍼에게 닥친 ‘현실’을 음미해보는 것이 이 책의 독후감이 될 것이다.

그를 사랑한 어머니, 삶을 풀어나가야 할 크리스토퍼, 인생은 오묘한 여정이다. 여운이 깊게 드리우는 2017년 노벨문학상 작가의 《우리가 고아였을 때》에 푹 빠져보길 권한다.

이근미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