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곰팡이형 부정'에 무너진 일본 제조업

입력 2017-10-23 07:48


“좀벌레가 갉아먹었다기 보다는 곰팡이가 퍼져 건물이 썩어 무너진 격이다”(닛케이비즈니스)

최근 일본 제조업체들이 품질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고베제강소, 닛산자동차가 제품 품질검사 데이터 조작 및 무자격자 품질검사 사실이 들어나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들 회사에 앞서 미쓰비시자동차 등이 연비조작 등으로 명성에 먹칠을 하기도 했습니다.

‘메이드 인 저머니’와 함께 품질의 대명사격이던 ‘메이드 인 재팬’ 신화가 저무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일본 언론들은 일본기업의 부정행위에 대해 ‘곰팡이형 부정’이라고 분류합니다. 짧게는 수년에서 부터 길게는 수십년에 걸쳐 회사 조직 전체에 ‘품질 조작’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진 것을 두고 곰팡이에 비유한 것입니다.

서구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영진이나 직원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횡령·회계조작 등을 일삼는 ‘좀벌래형 부정’과는 원인과 처방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일본 주간 닛케이비즈니스는 무자격 직원이 신차 완성 검사를 행한 닛산자동차와 알루미늄 부터 제강제품까지 주요 생산제품의 데이터를 조작한 고베제강의 부정 사례는 회사조직 전체가 장기간에 걸쳐 부정을 묵인한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닛산자동차의 경우 20여년 전부터 무자격자가 안전검사를 담당했습니다. 일본내 6개 공장 모두에서 도로차량법을 위반하면서 무자격차가 차량 품질검사를 수행했습니다. 관련 검사서류에 유자격자가 검사를 한 것인냥 성명을 기재하고 인감을 찍어 위장서류를 제출하는 등 조작이 일상화됐습니다. 심지어 무자격자가 검사를 한 사실이 적발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무자격자가 검사대에 서는 ‘나사빠진’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고베제강소는 무려 40년 전부터 데이터 조작을 자행했다는 증언이 나온 상황입니다. 알루미늄, 구리, 철분, 제강 제품 모두 거짓이 판을 쳤습니다.


두회사 모두 “납기를 지키겠다는 압박감 탓에 부정이 자행됐다”고 해명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일본형 부정사례는 단발성 개인 비리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조직내에서 여러 사람으로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퍼졌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조직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조직 내에서 장기간 빈번하게 부정이 자행되는 모습은 다른 일본 기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네요.

2008년 철강관련 10개 업체들이 스테인리스 강관 수압시험 데이터를 집단으로 조작했던 사건, 2014년 미쓰이스미토모건설이 요코하마 아파트 기초지반 데이터를 조작한 사건, 2015년 도요고무공업의 면진고무제품 데이터 조작 사건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에 왜 곰팡이형 부정이 만연한 것일까요. 그 이유로는 과거에는 문제시되지 않던 ‘관행’이 시대변화와 새로운 규제 등장에도 사라지지 않고 존속하면서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은폐하다가 문제가 커졌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조작과 은폐가 장기화·일상화되면서 부정방법도 진화해 내부감사에서 적발하는게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고 합니다. 특정 개인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관여한 조직 전체 문제로 확대되면서 문제 제기와 적발, 자정작용도 더 힘들어졌다는 설명입니다.

문제해결이 좀처럼 쉽지않은게 곰파이형 부정이라고 합니다. ‘좀벌레형 비리’에 대해선 살충제를 뿌리듯 부정행위를 한 개인을 처벌하면 되지만 조직전체가 관여한 ‘곰팡이형’에선 개인에 대한 처벌이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습기를 제거하지 않고 곰팡이를 없앨 수 없듯이 곰팡이형 부정은 비리가 확산된 근본원인을 찾아 시정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과연 ‘고질병’인 ‘곰팡이형 부정’을 치유하고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썩은 나무 쓰러지듯 무너지는 것일까요. 일본 기업들이 갈림길에 선 모습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