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라 여행작가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기
(8)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해골모양 등 기묘한 거대 바위
암벽 등반가들에겐 '천국'
히든밸리·바커댐 등 트레일도 인기
해발 3000피트 고지대 사막
미국 최고의 별 관측지 중 하나
사막 전망대에 오르면 '가슴이 뻥'
절경의 파노라마 한눈에 쏙
미국 남서부에 있는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는 두 개의 사막이 만난다. 고지대의 서늘하고 습한 모하비 사막과 저지대의 뜨겁고 건조한 콜로라도 사막이다. 이곳에는 빙하가 만든 계곡이나 강물이 조각한 거대한 협곡 같은 화려한 장관은 없다. 이질적인 두 사막이 만들어내는 신비롭고 잔잔한 세상이 있을 뿐이다. 황량한 벌판에는 저마다 달리 자란 조슈아 나무와 선인장이 가득하고, 척박한 토양 위로는 야생화가 어김없이 피고 진다. 억겁의 세월이 다듬고 쌓아 올린 거대한 바위와 사막을 둥지로 삼고 살아가는 동물들, 매일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까지. 조슈아 트리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낭만은 사막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조슈아, 선지자 여호수아의 기도 모습서 유래
끝없이 펼쳐진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른다. 차창 너머에는 황폐하고 고독한 사막의 풍경이 오래된 추억처럼 스쳐 지나간다. 빛바랜 잡초와 덤불만이 가득하던 벌판 위로 별안간 이상한 모양의 식물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기괴하게 뻗은 가지의 끝마다 밤송이처럼 뾰족한 가시 방울이 매달린 모습의 나무, 미국 남서부 모하비 사막 일대에서만 자란다는 조슈아 트리(Joshua Tree)다. 이 나무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Joshua Tree National Park)은 모하비 사막과 콜로라도 사막의 교차지역을 광범위하게 아우른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페르디난드 헤이든,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존 뮤어가 있듯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의 탄생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지질학자이자 사막 애호가 그리고 환경운동가였던 미네르바 호이트(Minerva Hoyt) 박사다. 그는 두 개의 사막이 맞닿으며 만들어낸 독특한 생태계와 지질학적 가치를 깨닫고 당시 대통령이던 루스벨트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 결과 1936년 조슈아 트리 국립 기념지역으로 지정됐고, 1994년 국립공원으로 격상됐다.
공원은 크게 모하비 사막에 해당하는 블랙 록 캐니언(Black Rock Canyon)구역과 히든 밸리와 점보 록(Hidden Valley and Jumbo Rocks)구역 그리고 콜로라도 사막에 해당하는 커튼우드(Cottonwood) 지역으로 나뉜다.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데 정답은 없지만, 대부분 여행자는 주요 명소가 집중돼 있는 히든 밸리와 점보 록 구역, 키즈 뷰(Keys View) 전망대 그리고 초야 선인장 가든(Cholla Cactus Garden) 정도를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쪽 입구를 지나 공원의 중심을 관통하는 파크 블러바드(Park Boulevard)를 따라 달린다. 듬성듬성 보이던 조슈아 트리가 어느새 거대한 군락을 이룬 채 들판을 빼곡히 메웠다. 어느 것은 막대기처럼 멋없이 길쭉하고, 어느 것은 사과나무처럼 풍성하다. 어떤 것은 익살스럽고 또 어떤 것은 처연하고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셀 수 없이 많지만 어느 하나 같지 않은 것이 꼭 사람을 보는 듯하다.
조슈아 트리는 나무로 불리지만 사실은 나무가 아니다. 정확한 학명은 유카 브레비폴리아(Yucca Brevifolia)로 용설란과의 식물이다. 몸통을 반으로 가르면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채 섬유질이 겹겹이 쌓여 있는데, 흡사 독일식 빵인 ‘바움쿠헨’을 연상케 하는 모양새다. 나이테가 없으므로 조슈아 트리의 나이는 키로 짐작한다. 태어나서 초반 10년 정도는 일 년에 약 8㎝씩 빠르게 성장하고 이후에는 3㎝ 이하로 더디게 큰다. 보통은 25년에서 100년 사이를 살지만 수백 년 이상을 사는 것도 있다.
조슈아 트리의 어원도 흥미롭다. 조슈아는 우리말로 하면 ‘여호수아’, 즉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선지자의 이름이다. 19세기 중반 모하비 사막을 지나던 모르몬교 신도들이 이 식물을 발견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여호수아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기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여 ‘조슈아’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기묘한 모양의 다양한 바위가 가득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 볼 것이 조슈아 트리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흡사 거인이 마구 쌓아 올린 것 같은 기묘한 생김새의 바위들이야말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보물이다. 공원에 있는 대부분의 바위는 몬조그래니트(Monzogranite), 즉 화강암의 일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만 년 전 태평양판과 북아메리카판이 충돌하면서 분출된 마그마가 천천히 식으며 바위가 됐고, 이후 오랜 세월 동안 물과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쪼개지고 마모되면서 둥글둥글한 화강암 구를 형성했다. 해골을 닮은 스컬 록(Skull Rock), 금방이라도 반으로 갈라질 것만 같은 스플릿 록(Split Rock), 아치 록(Arch Rock) 등 온갖 만물이 바위가 돼 굳은 듯 다채롭다. 돌덩이들이 이렇게나 많다 보니 이곳은 암벽 등반가들 사이에서 천국으로 통한다.
공원 곳곳에서는 볼더링(bouldering)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클라이밍을 즐기는 모험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를 수 없다면 걸어도 좋다. 27개의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히든 밸리(Hidden Valley) 트레일이다. 왕복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짧은 트레일이지만 조슈아 트리 공원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막 특유의 생태계와 지질환경이 잘 응축돼 있다. 근처에 있는 바커 댐(Barker Dam) 트레일도 좋은 선택이다.
바커 댐은 1900년 바커라는 이름의 목축업자가 사막에서 물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기 위해 세운 댐이다. 지금은 동물과 새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는 세라노, 카후이야, 체메후에비 등 이곳에 거주했던 원주민들이 남긴 암벽화와 암채화도 찾아볼 수 있다. 암벽화를 찾는 것이 취미라는 노부부를 우연히 만나 함께 모험에 나섰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알려주는 좌표를 따라 이 바위 저 바위를 누비다 보니 마치 전문 탐사대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사막의 꼭대기에서 만나는 풍경
다음으로 향한 곳은 키즈 뷰 전망대다. 공원에서 가장 높은 해발 1582m에 있는 곳으로 파크 블러바드에서 차로 20분 정도를 남하하면 도착한다. 전망대에 다가서자 가슴 뻥 뚫리는 시원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샌 하신토 산(Mount San Jacinto)과 고르고니오 산(Mount Gorgonio)은 물론 팜 스프링스(Palm Springs), 지진대로 유명한 샌 안드레아스(San Andreas)단층, 코첼라 밸리(Coachella Valley), 솔튼 시(Salton Sea)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맑은 날에는 멕시코까지 조망할 수 있지만,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헤이즈로 인해 시야가 좋지 못한 날도 많다. 키즈 뷰를 뒤로하고 공원의 남동쪽으로 향한다. 달리면 달릴수록 창밖의 풍경은 더욱 척박하고 고요해진다. 다른 행성에라도 온 듯 180도 달라진 분위기에 콜로라도 사막에 진입했음을 느낀다. 땅이 바뀌었으니 땅의 주인 또한 당연히 달라진다.
이곳에서는 조슈아 트리 대신 스모크 트리(Smoke Tree)와 아이언우드(Ironwood)가 자란다. 그 사이를 누비는 동물들의 생김새도 다르다. 모하비 사막에 검은꼬리잭멧 토끼와 사막 숲쥐가 산다면 이곳에는 캥거루 쥐와 키트 여우가 있다. 이 구역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곳은 초야 선인장 가든이다. 넓은 핀토 분지(Pinto Basin)에 키 작은 선인장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솜털처럼 보송하고 귀여운 생김새 덕분에 테디 베어라는 별명까지 붙었지만 함부로 만졌다간 큰코다친다. 보기와는 달리 가시가 매우 날카롭기 때문이다. 신발이나 옷에 한번 붙으면 도통 떼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정해진 트레일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코틸로 패치(Ocotillo Patch)도 빼놓을 수 없다. 오코틸로는 콜로라도 사막에 자생하는 대표적 식물이다. 길쭉한 생김새 때문에 채찍나무라는 별명을 지녔다. 봄과 가을이 되면 잎자루 끝에 빨간 꽃망울을 피우는데 조슈아 트리 못지않게 아름답다.
미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별 관측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 단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별을 보는 일이다. 뜨거운 석양이 지고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오면 이 드넓은 사막은 하루 중 가장 화려한 시간을 맞이한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지역은 미국에서도 최고의 별 관측지 중 하나로 꼽힌다. 해발 914m 이상의 고지대 사막에 있는 데다 로스앤젤레스나 피닉스 같은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별을 더 잘 관측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선 날씨가 좋아야 하고 하늘이 깨끗해야 한다. 보름달이 뜨는 날보다는 그믐밤이 적합하다. 달빛이 생각보다 매우 밝아 별 관측에 커다란 방해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은하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계절은 여름으로, 보통 4월부터 10월까지를 최적의 시기로 꼽는다. 사막의 별을 가장 낭만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캠핑이다. 공원 내에는 블랙 록, 인디언 코브(Indian Cove)를 포함해 9개의 유료 캠핑장이 마련돼 있다. 반드시 공원 내에 머물 필요는 없다. 하늘에는 경계가 없고 사막은 계속 이어지니 말이다.
인근 도시에 있는 외부 캠핑장을 이용해도 되고, 캠핑 장비가 없다면 캠핑카나 트레일러를 빌려 하룻밤 머물 수도 있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근처 황무지에 빨간 트레일러 하나를 빌렸다. 석양이 질 무렵 자그마한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며 저녁을 준비했다. 맘에 드는 조슈아 트리 앞에 간이 식탁을 펴고는 음식을 하나둘씩 옮겼다. 오묘한 빛으로 일렁이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고 사막 저편에서는 코요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코요테가 은하수를 창조했다던 나바호 부족의 믿음이 사실이었을까. 검은 실루엣이 돼버린 조슈아 트리의 머리 위로 어느새 은하수가 강물처럼 흘렀다. 음식 한 입에 맥주 한 모금을 곁들이며 밤새도록 별을 헤아렸다. 사막과 나무 그리고 별,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는 없다.
여행정보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약 230㎞ 떨어진 곳에 있으며, 자동차로 약 2시간 걸린다. 연중무휴이고 입장료는 자동차 한 대에 25달러며 1주일간 유효하다. 공원 내에는 셔틀버스를 비롯한 어떤 편의시설도 없다.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비박하는 것은 금지돼 있으며 ‘DAY USE ONLY’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지역의 경우 해가 진 이후에는 머물 수 없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에서는 매년 나이트 스카이 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는 다가오는 11월10~12일에 걸쳐 개최된다.
조슈아=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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