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림 국감'… 36개 기관장 불러 12분 감사

입력 2017-10-19 17:35
교문위, 한꺼번에 70명 호출
피감기관 5년 새 135개 증가
7분간 3개 기관장에 '겉핥기' 질의

교문위 122곳 최다…과방위 80곳
하루 최대 30곳 속전속결 감사

증인선서·업무보고 시간 등 빼면
의원 질의시간 크게 줄어

'감사 사각지대'도 생겨
의원들, 관심 많은 기관에만 집중
소규모 기관 불법·비리 등 방치

격년제 집중 감사 등 대책 시급


[ 유승호/배정철 기자 ]
“자리가 없어 들어오지 못 한 분은 명단을 알려주면 별도 회의장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장.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국정감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장내 질서 정리에 바빴다. 이날 교문위는 한국관광공사 대한체육회 등 36개 기관의 국감을 했다. 기관장과 부기관장급 증인만 70명이 넘어 회의장에 앉을 자리조차 부족했다. 이들과 함께 온 각 기관 실무자와 국회의원, 보좌진까지 뒤엉켜 교문위 회의장 앞은 아침부터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수박 겉핥기식 ‘날림 국감’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문위는 오전 10시14분 개의해 점심시간 등 정회시간을 제외하고 7시간30분가량 감사를 했다. 피감기관 한 곳의 평균 감사 시간은 12분30초였다. 36개 기관장 중 13명만 의원들의 질문을 받았고 나머지는 단 한 차례도 발언하지 않은 채 자리만 지키다 돌아갔다.

교문위만이 아니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정부 출연 연구기관 26곳, 국방위원회는 16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2개, 환경노동위원회는 8개 기관 감사를 속전속결로 몰아서 했다. 여야가 정치공방에 전투력을 소진하면서 세금을 쓰는 정부기관에 대한 국회의 견제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가 정쟁을 벌이다가 제대로 감사를 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9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감은 김원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사퇴한 것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됐다. 증인 선서, 기관별 업무보고, 의사진행 발언 등을 빼면 실질적인 감사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몰아치기 국감은 몰아치기 질의를 낳고 있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7분에 불과한 한 차례 질의 순서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 지질자원연구원 식품연구원 등 3개 기관장에게 번갈아가며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북한 핵실험, 살균제 계란 파동 등에 대해 물었다.

국회가 속전속결 국감을 하는 것은 피감기관 수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감기관 수는 2012년 566개에서 2013년 639개, 2014년 672개, 2015년 708개로 늘었다. 지난해 691개로 소폭 감소했지만 올해 다시 701개로 증가했다.

상임위별로는 교문위의 피감기관이 122개로 가장 많다. 교문위는 앞으로도 40여 개 기관에 대한 감사를 추가로 해야 한다. 과방위는 80개, 법제사법위원회는 72개, 국방위는 63개 기관을 대상으로 국감을 한다.


정부 부처 수엔 큰 변화가 없지만 산하 기관이 늘면서 국감 대상 기관도 증가하고 있다. 3선 의원의 한 보좌관은 “정권마다 자기 사람들을 챙겨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공공기관을 신설하거나 쪼개다 보니 국감 피감기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산하 유관기관이 너무 많으니 정부는 공공기관 통폐합과 기능 조정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며 “공공기관의 기능을 민간으로 이양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수십 개 기관의 감사를 하루에 몰아서 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다 보니 국회의원과 보좌진 스스로 국감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자조적으로 얘기한다. 피감기관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보좌진 수는 9명 그대로다. 수행비서와 행정 담당 비서, 지역구 상주 인력 등을 빼면 국감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은 의원 한 명당 3~4명이다.

의원들이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린 자료를 내놓는 것도 짧은 기간에 제한된 인력으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라고 토로한다. 홍일표 한국당 의원은 지난 17일 국내 15개 증권사들이 투자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신용융자 사업으로 거둔 이자수익이 2015년부터 2년6개월간 1조4672억원이라는 자료를 냈다. 하지만 이 자료는 올해 상반기 실적에 두 배를 곱한 수치를 연간 수익으로 간주해 증권사들의 이자수익을 실제보다 2000억원 많게 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 사각지대가 생겨나는 것도 불가피하다. 피감기관이 많아져도 의원 대부분은 대형 기관에 집중한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기관에 관한 내용으로는 여론의 관심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재선 의원 보좌관은 “규모가 작은 공공기관에 감시의 눈길이 미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불법이나 부정한 일이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현실적으로 모든 피감기관에 신경을 쓰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날림 국감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으로는 격년제 국감이 거론된다. 정부부처와 대형 공공기관에 대해선 매년 국감을 하되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곳은 둘로 나눠 2년에 한 번씩 감사를 하는 방안이다. 상임위를 ‘분반’하는 방안도 있다. 상임위원들을 3~4개 조로 나눠 피감기관을 할당,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피감기관을 어떻게 나눌지 등을 놓고 의원들 간 이해관계가 갈려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유승호/배정철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