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 기업인이 이끈다
현장에서
시애틀을 미국 최고 부자도시로 만든 아마존의 힘
시애틀 도심 오피스 빌딩 20% 아마존이 사용
지난해 집값 13.5% 올라 미국 주요도시 중 1위
7번가에 건설 중인 '아마존 왕국'의 심장부엔
거대한 식물원·AI시스템 적용한 무인점포도
[ 송형석 기자 ] 18일 미국 시애틀 중심부에 있는 사우스 레이크 유니언 지역. 새로운 오피스 빌딩들을 지으려고 터 파기 공사가 한창이었다. 2010년 워싱턴주 벨뷰에서 이 지역으로 본사를 옮긴 아마존이 매년 수천 명의 직원을 새로 뽑으면서 거리 곳곳이 공사장으로 변했다. 현재 시애틀에 둥지를 튼 아마존 직원은 4만여 명. 아마존이 투자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관계사 임직원들을 합하면 아마존 관련 일자리가 5만 개가 넘는다. ‘혁신기업가’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선택에 힘입어 시애틀은 미국 최고 부자 도시 중 하나로 우뚝 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5년째 공사 중인 시애틀
과거 시애틀을 상징하는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스타벅스였다. 3~4년 전부터는 첫손가락에 꼽는 기업이 아마존으로 바뀌었다. 고용 인력면에서 다른 기업들이 아마존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아마존의 영향력은 오피스 빌딩 점유율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애틀에 있는 오피스 빌딩 중 20% 안팎을 아마존 직원들이 쓰고 있다. 입지가 좋은 도심 건물엔 어김없이 아마존 간판이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저스 CEO가 이끄는 ‘아마존 왕국’의 심장부는 7번가 옆 ‘데니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35~40층 규모 고층 건물 3개 동과 미팅센터, 식물원 등이 조성되고 있다. 2013년 첫 삽을 뜬 캠퍼스 공사의 진척률은 70% 안팎이다. 첫 번째 고층 건물인 ‘도플러’는 2015년, 두 번째 건물인 ‘데이1’은 지난해 각각 문을 열었다. 마지막 세 번째 고층 건물은 2019년에 완공된다.
아마존 캠퍼스 건물들의 이름은 이 회사의 경영철학이나 신제품과 관련이 있다. 베저스 CEO 사무실이 있는 건물인 데이1엔 창업 첫날의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는 속뜻이 담겨 있다. 도플러는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를 개발할 때 썼던 코드명이다.
아마존 캠퍼스의 명물은 내년에 문을 여는 식물원 바이오 스피어스(Bio Spheres)다. 30m 높이의 거대한 원형 유리 세 개를 겹쳐 놓은 듯한 모양의 건물로 300여 종의 희귀식물을 볼 수 있다. 직원들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설계된 시설이지만 공사가 진행되는 도중 식품개발 연구단지라는 용도가 더해졌다.
데이1 1층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 최초의 무인점포 ‘아마존고’는 아마존이 지향하는 미래 매장을 상징한다. 스마트폰으로 아마존 앱(응용프로그램)을 실행한 뒤 매장에 들어가 진열대에 놓인 물건을 집어들면 자동으로 앱의 장바구니에 구입한 상품 목록과 가격이 표시된다. 결제는 물건을 들고 점포를 빠져나오는 순간 이뤄진다. 계산 순서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아직까지 이 점포는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을 표시하는 AI 시스템이 오류 없이 작동하는지 시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마존은 내년부터 미국 주요 대도시에 아마존고 매장을 설치할 예정이다.
지난해 집값 상승률 미국 1위
아마존에 대한 시애틀 시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미국 각지에서 젊은 인력이 유입되면서 도시에 활력이 돌고 있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아마존이 시애틀로 본사를 옮긴 2010년 이후 시애틀 인구는 10만 명 늘어 지난해 70만 명을 돌파했다. 시애틀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최근 시애틀로 이주한 사람 중 절반 정도가 아마존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갑이 두툼한 아마존 직원들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애틀 중간소득 가계의 평균소득은 2015년 8만달러를 돌파했다. 6만5000달러 선에 머물고 있는 미국 가계소득 평균값보다 30%가량 높다. 아마존이 2010년 이후 임직원에게 지급한 임금 257억달러가 소득지표를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양도 많지만 질적으로도 뛰어나다. 미국 직업 정보업체인 글래스도어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시애틀 지역의 소프트웨어 직종 일자리는 6.7% 늘었다. 실리콘밸리의 ‘심장’으로 불리는 새너제이에서 같은 기간 7.7%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소프트웨어는 고연봉 업종으로 기본연봉이 10만달러가 넘는다.
부동산 관련 지표에서도 시애틀의 호황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집값을 측정하는 S&P케이스실러지수가 가장 많이 뛴 도시가 시애틀이다. 시애틀 집값(7월 말 기준)은 지난 1년간 평균 13.5% 올랐다. 미국 도시 주택가격 상승률 평균값 5.9%의 세 배에 육박한다. 2위 포틀랜드(7.6%)와의 격차가 약 6%포인트에 이른다.
부동산중개인인 제이슨 밀러 씨는 “주택가격이 오르고 매물은 줄어드는 분위기”라며 “4인 가족이 살 만한 주택을 도심 근처에서 구하려면 80만달러(약 9억원)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애틀=송형석 특파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