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실험' 아닌 '학습'이 필요하다

입력 2017-10-18 18:40
수정 2017-10-20 09:04
"'사회적 평등' 앞장서 실험한 프랑스
망가진 경제 복구하느라 '진땀'

선례 통해 교훈 얻는 게 '학습'
명분에 기댄 '실험' 강행은 곤란"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


프랑스는 18세기 말 대혁명 이후 ‘사회적 평등’ 실현에 앞장서 온 나라다. ‘프랑스는 민주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공화국이다(une République démocratique et sociale: 헌법 1조1항)’라는 선언으로 헌법을 시작할 정도다.

기회의 평등, 연대를 의미하는 ‘솔리다리테(solidarité)’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도입을 주저하지 않았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실업문제 해결’을 내세운 ‘법정 근로시간 주당 35시간으로 단축’도 그렇게 나왔다. 찾아온 것은 ‘일자리 천국’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늘어난 1인당 고용비용으로 인해 기업들이 채용을 꺼리면서 되레 일자리가 급감했다. ‘시장의 역습’이었다.

이웃나라 독일에 비해 성장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고, 청년층을 비롯한 실업률은 독일의 두 배(청년실업률은 세 배)가 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존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프랑스인들의 자각은 지난봄 대통령 선거에서 옛 체제 청산을 뜻하는 ‘데가지즘(dégagisme)’ 구호로 나타났다. 근로시간 확대 등 노동시장 개혁과 공공부문 축소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40대 정치신인 에마뉘엘 마크롱이 당선된 배경이다.

프랑스를 애먹이고 있는 ‘사회적 경제’를 맹렬한 속도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문재인 정부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실현할 방안으로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이른 시일 내 근로시간 단축도 시행하기로 했다. ‘약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이들 정책에 가장 큰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곳이 문재인 정부가 보호·육성해주겠다는 중소기업들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정부 기대와 다른 부작용과 역풍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파르게 오른 최저임금이 버거워진 중소기업과 업소들은 자동화 장비를 도입하며 고용을 줄이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제빵사 직접고용을 명령받은 파리바게뜨와 가맹점주들은 비용 증가로 채용 축소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들에 근로시간 단축을 강행하면 ‘프랑스의 실패’를 답습할 게 분명하다는 경고도 꼬리를 잇는다. 사회적 경제의 강점은 실현될 수만 있다면 더없이 아름답고 이상(理想)적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이어서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도입에 나섰던 배경이다.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정권에 대한 고공(高空) 지지율은 마냥 믿을 게 못 된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집권당이었던 민주당의 추락은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보여준다. 민주당은 2009년 총선에서 우파 자유민주당의 장기집권에 따른 ‘적폐’에 넌덜머리를 낸 일본 유권자들의 몰표를 거둬들였다. 중의원 의석의 65%에 육박하는 ‘단일정당 최다의석’ 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집권했다. 정권 초기 지지율은 72%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오키나와 미군 공군기지 이전과 각종 복지프로그램 확충 등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는 공약들을 대거 내놔 집권에 성공했지만, 어느 공약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무능을 드러낸 탓이었다.

역사의 진보와 발전을 위해 때로는 과감한 ‘실험’이 필요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험은 기존 사례를 두루 학습한 뒤에, 마땅한 해법을 찾을 수 없을 때 하는 게 순서다. 과거 사례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섭렵해 교훈을 얻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것을 ‘축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에 특히 부족한 게 이런 ‘축적’이라는 지적은 수없이 제기돼 왔다.

기업인들이 정치인과 관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 “현실을 모른다” “세상 바뀐 걸 알려고 하지 않는다” 등이라고 한다. 복잡다단한 현실세계를 공부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애로를 하소연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서 학예회 하듯 국정을 몰고 가서는 곤란하다. 학습을 통한 축적을 외면한 채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만을 고집하는 것은 무슨 말로 포장하건 무책임이요, 오만일 뿐이다. 국정을 실험실에서 끄집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