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백악관은 ‘혼돈의 구덩이’입니다. 사람도, 규율도, 철학도 부족합니다. 대통령도 앞뒤 안맞은 애기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불쑥불쑥 내놓습니다. 직원들은 서로를 물어 뜯습니다. 그런 백악관에서 가장 안정감있고, 돋보이고, 예측 가능한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 존 켈리 비서실장입니다.
지난 7월말 국토안보부 장관에서 발탁된 켈리는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입니다. 그가 어떤 일을 했느냐고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주목할 만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는 지난달 말 피터 나바로가 이끄는 백악관 무역·제조업국을 게리 콘이 이끄는 국가경제위원회(NEC) 밑으로 옮기는 조직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잘 알다시피 나바로는 미국 UC어바인의 공공정책 및 경제학 교수로 대단한 보호무역주의자입니다. 중국 수입품에 45% 관세를 매기자는 것도 이 사람의 아이디어입니다. 게리 콘은 월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사장 출신으로 자유 무역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앙숙’입니다. 백악관에서 무역관련 회의를 하면 서로 맞고함을 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나바로를 콘 밑으로 넣은 것은 의미심장한 조치입니다. 나바로는 앞으로 콘에게 모든 정책 사항을 보고해야 합니다. 교역국들의 반발을 사는 강경 보호무역주의 대신 자유무역쪽으로 통상정책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나바로는 지난달 29일 낸 성명에서 “나는 규율을 중시여기는 사람이고, 켈리 실장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켈리가 백악관에서 두 앙숙간의 관계를 ‘단칼’에 정리한 것입니다. 켈리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 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그는 백악관내에서 시끄러운 ‘골치덩이들’을 다 내보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공보국장 ‘빅 마우스’ 앤서니 스카라무치, 통제불능의 ‘극우 이데올로고그’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겸 선임 고문이 모두 그의 건의로 퇴출됐습니다.
트럼프의 ‘애플 어브 아이(apple of eye)’(눈에 집어넣어도 안아플 정도로 귀여운 존재를 일컬을때 쓰는 말)로 불리는 이방카 트럼프·재러드 쿠슈너 부부도 지난 9월 방중 일정을 켈리의 얘기를 듣고 취소했다고 합니다. 국무부에서 할 일을 이방카 부부가 해서는 안된다고 깔끔하게 정리했다고 합니다.
어수선하게 이뤄지던 대통령 보고 체계를 본인으로 일원화하고, 참모회의를 일주일에 다섯 차례에서 세 차례로 줄이고, 회의시간도 20분을 넘기지 않게 만든 것도 모두 켈리 실장의 작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켈리가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켈리가 나머지 7년도 비서실장직을 수행할 것”이라며 대단히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 군인인 켈리 실장이 ‘세계 최악의 정치바닥’ 백악관에서 얼마나 버틸 지는 미지수입니다. 1970년 해병대 자원입대해 군 생활을 시작한 켈리는 2003년 이라크전 전투현장에서 해병대 준장으로 진급한 후 바그다드에서 북부 사마라와 티크리트 진군 작전을 지휘했습니다. 이 후 해병1원정군 사령관, 이라크 다국적군사령관을 거쳐 2012~2016년 미 남부사령관을 역임한 입지전적인 군인입니다. 그의 아들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했습니다.
켈리 실장은 지금까지는 백악관 내외부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 첫 시련은 내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로버트 뮬러 특검이 러시아 스캔들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정국이 다시 한번 요동치고,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지지기반이 흔들릴때 그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미 언론들은 켈리 실장의 성공은 트럼프 행정부가 3년을 견딜 지, 7년을 갈 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