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부회장 용퇴
삼성 인사·조직개편 어떻게 될까
과거 사장 교체 기준은 '60세 이상·3년 이상 재직'
이번엔 재직기간 긴 '장수 CEO' 대거 교체 전망
삼성전자 윤부근 대표·이상훈 사장 중책 맡을 듯
전자·생명·물산, 관련 계열·자회사 경영 총괄
[ 좌동욱 기자 ] 삼성전자의 간판 경영자인 권오현 부회장이 13일 전격 사퇴를 발표하자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 대부분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대표와 신종균 IT·모바일(IM)부문 대표 등 핵심 경영진도 언론 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로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사퇴 시점도 놀라웠다. 이날 삼성전자가 발표한 3분기 잠정실적은 사상 최고 실적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권 부회장이 책임지고 있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눈부신 실적 향상에 힘입은 것이다. 블룸버그, 포천 등 외신들도 ‘삼성전자 CEO, 사상 최대 실적 발표일에 전례없는 위기 강조하며 사임’ ‘삼성 서프라이즈, 기록적인 이익에도 CEO 사임’ 등 긴급 뉴스를 잇따라 보도했다.
후임자 누가 될까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권 부회장의 사퇴 결심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라고 전했다. 권 부회장은 이 부회장 부재 속에서 경영의 중심을 잡아야 할 자신이 중도에 물러나는 것이 자칫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다는 대목을 가장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재판이 장기화되고 인사 전략 등 주요 경영의사 결정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용퇴를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실적 최정점에서 자신이 물러나야 주요 계열사에 포진하고 있는 ‘장수 CEO’들의 동반 퇴진과 젊은 경영진의 약진을 유도해 그룹 전반에 쇄신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관측이다.
한 계열사 CEO는 “무책임이 아니라 책임경영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라며 “연봉 100억원이 넘는 경영자가 이렇게 살신성인하는 모습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향후 인사나 조직 개편 방향에 대해서도 본인의 견해를 이 부회장 및 일부 경영진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이날 “이사회에 후임자를 추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인사 및 조직 개편을 위한 나름의 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윤부근 사장과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이상훈 사장이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사태풍 몰려온다
권 부회장의 전격적인 퇴진으로 삼성그룹에는 대대적 인사태풍이 불어닥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장단을 중심으로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무성하다.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를 건너뛴 데다 올해 5월 단행한 부사장급 이하 인사도 예년의 절반 이하 규모였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그룹의 과거 인사관행에 따라 만 60세가 넘고 재직 기간이 3~5년이 넘은 경영진이 교체 대상으로 거론될 전망이다. 다만 새로운 성장동력을 일궈냈거나 괄목할 만한 실적 향상을 이룬 사장들은 유임하거나 부회장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그룹은 2008년 삼성 특검사태로 당시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전략기획실을 해체할 때 인사위원회를 구성해 2009년 초 사장단 인사를 했다. 당시 기준 중 하나가 ‘만 60세’ 초과였다.
현재 삼성그룹 계열 17개 주요 기업의 사장단(대표이사 부사장 포함)급 전문 경영진 32명 중 60세 이상 경영자 비중(2018년 기준)은 21명으로 66%에 달한다. 삼성전자만 해도 권오현 부회장(65)을 비롯해 10명의 사장이 만 60세를 넘었다. 재직 기간 3년이 넘은 경영진도 66%(21명)에 이른다.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대대적 조직 개편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 인사 및 인수합병(M&A) 등 전략 업무에 공백이 생기고 있어서다.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하기 위한 조직이나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등 중공업 분야 구조조정을 위한 전략 업무와 M&A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는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크게 반영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부문별 주력 회사가 관련 계열사들의 전략 및 인사 업무를 총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또 삼성전자 등 제조업 계열사 중역들이 금융 계열사로 이동해온 기존 인사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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