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빠진 CEO "경영은 그림처럼 멋진 예술"

입력 2017-10-11 18:21
한경 창간 53주년 기념 명사미술제…12일부터 한경갤러리서

박해룡 고려제약 회장 등 전·현직 CEO, 문화계 인사
13명 참여 근작 29점 선봬

강석진 전 GE코리아 회장
"그림 그리는 것처럼 기업을 운영하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 김경갑 기자 ]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인근에서 부모님은 가내수공업으로 공을 만들어 내다 팔았다. 동네에서는 그를 ‘볼(ball)집 아이’라 불렀다. 어린 시절 꼬챙이나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마음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열여섯 살 때 서울 경동고 미술반에서 김진명 화백(1916~2011)을 만났다. 미대 진학을 권유했지만 성균관대 약대를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종근당에 입사해 25년간 월급쟁이로 생활하다 1982년 독립해 제약회사를 차렸다. 2005년 회사 경영을 아들(박상훈 사장)에게 일부 넘겨주고 틈나는 대로 그림에 매달렸다. 그림 그리는 최고경영자(CEO) 박해룡 고려제약 회장(78)의 얘기다.

박 회장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기업인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이색 그림전을 연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이달 12~22일 펼쳐지는 ‘명사미술제-열정과 도전’이다.

한국경제신문 창간 53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행사는 산고(産苦)에 비유되는 예술 창작에 뛰어든 경영인과 문화예술인의 새로운 도전 및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강웅식 전 아메리칸스탠다드코리아 회장, 이청승 창조한국 이사장, 유진 시온ENG·싸카펜코리아 회장, 이긍희 전 MBC 사장, 신수희 용인복지재단 이사장, 이연숙 울산 태연학원 이사장, 엄광석 한국예술경영협회 상임고문, 정상은 중앙그룹 회장, 조병철 도서출판 주영 대표, 김문영 서울미술협회 부회장 등 13명이 참여했다.

2002년 GE코리아 회장으로 퇴임한 뒤 화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강석진 회장(78)은 “미학의 감성적 따스함과 창조적 에너지를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고객 및 직원과의 접점을 만드는 것이 결국 기업 경영의 목표”라며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기업을 운영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이번 전시에 중국 티베트 자치구의 궁정식 건축물 포탈라궁을 보고 느낀 감동을 부감법으로 옮긴 풍경화를 출품했다.

1996년 한국미술협회 심사를 거쳐 정식 화가가 된 강웅식 전 회장(77)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7시30분까지 그림 작업에 몰두한다. 그는 “경영인, 화가로 이어지는 이모작 인생은 경영의 기술과 회화의 상상력을 극대화해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는 조화로운 세계로의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강 고문은 이번에 미국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며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소도시 라구나우즈의 풍경을 재치있게 잡아낸 작품을 내건다.

제주에 창조아카데미를 개설한 이청승 이사장은 말 그림을 들고 나왔다. 젊은 시절 화장품업체 한국폴라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경영한 그는 달리는 말, 소싸움 등의 역동적인 모습을 독특한 시선으로 화면에 옮겨 눈길을 끌었다.

1991년 컴퓨터사업을 시작한 정상은 회장(71)은 서울 대흥동 이화여대 옆 본사 사무실에 차려 놓은 아틀리에에서 20여 년간 갈고 닦은 그림 솜씨를 보여준다. 그는 해변 풍경과 담벼락에 길게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화폭에 옮긴 근작을 걸었다.

유진 회장은 15년 가까이 낮에는 경영 현장을 지키고 밤이면 캔버스 앞에 앉아 ‘주경야화(晝經夜畵)’ 생활을 해왔다. 뾰족한 산에 매달린 산정과 연안 어촌의 따뜻한 풍경을 차지게 그려낸 신작을 출품했다. 이긍희 전 사장은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와 강원 삼척 장호항의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포착한 작품을, 엄광석 상임고문은 경주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을 감칠맛 나게 묘사한 작품과 외손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을 선보였다. 신수희 이사장은 가족과 여인을 그린 작품, 이연숙 이사장은 연꽃이 어우러진 야생의 이미지를 그린 작품을 걸었다.

‘명사미술’ 회장을 맡은 엄광석 상임고문은 “기업 경영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지식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며 “상품이나 서비스로 대중과 소통하는 경영자들이 또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라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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