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에 부담금 걷어 수입차에 보조금 주나

입력 2017-10-09 18:13
환경부, 친환경차 협력금 재추진

친환경차 체급 다른데…
르노삼성·쌍용차에 테슬라와 맞서라는 환경부

현대·기아차 빼고는 라인업도 갖추지 못해
1~8월 수입 친환경차 판매 63% 증가
친환경 보조금 주면 국산 자동차업계 엄청난 타격
업계 "취지 좋다고 무작정 도입 바람직 안해"


[ 강현우 기자 ] 환경부가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돈을 걷어 외국 자동차회사를 지원하는 제도를 또다시 추진하고 나섰다. 내연기관(엔진) 자동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걷어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카 등을 사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다. 3년 전 도입하려다 현실적으로 부작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돼 보류한 정책이다. 전기차 등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국내 업체들은 “일본 독일 미국 등 선진국 자동차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달 26일 내놓은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을 통해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의 시행 방안과 시기를 2019년까지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마련했다가 2020년까지 시행을 유예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를 대기오염물질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완성차업체들은 친환경차 기술이 전반적으로 선진국 자동차회사에 뒤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제도가 시행되면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자동차시장이 급격히 흔들릴 뿐만 아니라 친환경차 부문의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일반적으로 친환경차에는 배터리·전기 모터만으로 가는 전기차(EV), 모터와 엔진을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카(HEV), 하이브리드에 충전 기능을 더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카(PHEV) 등이 있다.

현재 국내 완성차 5사 가운데 현대·기아자동차만 전기차(EV),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부문에 풀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차세대 친환경차로 불리는 수소연료전기차(FCEV)도 상용화했다. 하지만 한국GM은 국내 판매 중인 볼트 EV와 PHEV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종전 스파크 EV는 볼트 EV를 수입하면서 단종시켰다. 말리부 HEV를 부평공장에서 생산하지만 엔진과 모터 등 핵심 부품은 외국산이다.

또 르노삼성자동차의 친환경차는 SM3 EV 1종뿐이고, 쌍용자동차는 친환경차 라인업이 아예 없다. 최종식 쌍용차 사장은 “올해 초 전기차 개발에 착수했지만 외부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할 경우 양산까지 10년은 걸릴 것”이라며 “전기차 출시 시기를 앞당기려면 해외에서 기술을 사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판매 중인 친환경차의 성능도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EV 부문의 격차가 심한 편이다. 국산 EV 가운데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가장 긴 현대차 아이오닉 EV는 191㎞를 간다. 반면 외국산인 볼트 EV는 383㎞, 미국 테슬라의 모델 S는 378㎞로 두 배에 달한다. 여기에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독일 기업들은 PHEV에 주력하다가 최근 ‘전 차종의 전동화(전기 구동력 추가)’를 선언하고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판매 중인 HEV 가운데선 현대차 아이오닉 HEV가 연비 22.4㎞/L로 가장 높다. 도요타 프리우스가 21.9㎞/L로 그다음이다. 그러나 중형 세단에선 혼다 어코드가 19.3㎞/L로 쏘나타(18.2㎞/L)를 앞서고, 준대형 세단에서도 도요타 캠리(17.5㎞/L)가 그랜저(16.2㎞/L)보다 높다.

국산과 수입 친환경차 경쟁력 차이는 판매량으로 이어진다. 지난 8월까지 수입 친환경차 판매량은 1만4808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2.7% 뛰었다. 이에 비해 국산 친환경차는 4만3567대로 28.7%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나마 니로, 아이오닉 등 신차 효과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같은 기간 전체 국산차 판매는 103만 대로 15만 대인 수입차의 일곱 배에 달하지만 친환경차는 국산 대 수입의 비율이 3 대 1 수준에 머물렀다.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제도의 기반이 된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대기환경보전법에 근거 규정이 있다. 골자는 배출가스(저탄소차는 온실가스)가 많은 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걷어 배출가스가 적은 차를 사는 이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다.

친환경차에 대한 보조금 제도는 계속 시행 중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중앙정부에서 1400만원, 지방자치단체에서 300만~1200만원의 보조금을 각각 받는다. 얼핏 보면 국가·지자체 재정으로 부담하는 것 같지만 나중에 시장이 활성화되면 국내 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부담금과 보조금 대상은 각각 구매자이지만 결국 국내 업체들이 판매하는 내연기관 차량의 부담금이 친환경차를 많이 판매하는 외국 업체에 대한 보조금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환경부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를 2015년부터 시행할 방침이었으나 ‘시기상조’라는 여론에 따라 2014년 9월 “2020년부터 시행하겠다”며 유예했다. 당시 업계에선 “핵심 기술을 갖고 있는 선진국 업체들이 보조금까지 받으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따라잡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며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도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르노삼성차나 쌍용차에 당장 테슬라와 경쟁하라고 떠미는 꼴”이라며 “취지가 좋다고 무작정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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