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핵합의 정신 부응안해”…결국 재협상으로 가나
WP “트럼프, 내주 이란 핵협정 불인정” 가능성
재협상 가기 전술 분석..이란은 재협상 불가 방침 천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이란 핵협정과 관련, “이란은 핵 합의 정신에 부응하지 않아 왔다”고 주장했다.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에 나서기 위한 사전 정지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이란 핵협정을 주제로 군 수뇌부들을 소집해 연 회의에서 “우리는 이란이 핵무기를 갖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그는 “이란 정권은 테러를 지원하고 중동 전체에 폭력과 유혈 사태, 혼돈을 수출한다”면서 “그것이 우리가 이란의 계속되는 침략적 행위와 핵 야욕을 끝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의후 이란 핵 합의 준수를 인증할 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곧 이란에 대해 듣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과 이란 관련 과제를 오래전에 해결했어야 했다”고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주 이란 핵협정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란의 협정 준수에 대한 불인증을 선언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AFP 통신도 익명의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인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거나 또는 재협상에 들어가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들이다.
이란 핵협정은 2015년 7월 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주요 6개국이 맺은 ‘핵 중단 협정(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다. 이란은 핵 개발을 중단하고 대신 서방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이다.
미 행정부는 협정 타결 이후 제정된 코커-카딘 법에 따라 이란이 협정을 제대로 준수하는 지를 90일 마다 인증해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의회는 이를 근거로 대(對)이란 제재 면제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부터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체결된 이 협정을 ‘최악의 합의’로 혹평하면서 집권 후 폐기하겠다고 강조했으나 취임 이후 두 차례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인증하고 제재 면제를 연장한 바 있다. 세번째 인증기한은 오는 15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까지 이란의 핵협정 준수를 인증하지 않거나 아예 판단을 유보하면 의회는 60일 안에 이란에 대한 제재를 재개할 지를 결정하게 된다. 의회 역시 판단을 유보한 채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공을 넘길 수 있다.
미 의회 내에서는 이란 제재를 재개할 경우 이란이 핵협정 철회 등으로 맞서면서 이란 비핵화를 위해 들여온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만약 의회가 판단을 유보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를 재개할 지, 개정을 위한 재협상을 할 지, 핵협정을 철회할 지 등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란을 북한과 함께 불량 국가로 지목하면서 핵협정 파기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미국 조야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유리하게 개정하기 위한 재협상을 위해 특유의 ‘엄포 전술’을 쓰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최근 ‘재협상 불가’방침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류를 읽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핵 합의 준수를 인증하지 않는다고 선언할 경우 이는 북한 핵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이 어렵사리 체결한 이란과의 핵 협상을 폐기할 경우 북한이 미국을 믿고 협상장에 나올 이유가 더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