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차사' 된 공공기관장 인선… 문재인 정부 공신들 '힘겨루기' 탓?

입력 2017-09-29 18:37
문재인 캠프 출신 - 장하성 라인 경쟁

한국거래소 이사장 공모
김광수 전 FIU 원장 지원 철회
부산 출신 인사 유력후보 부상
친문 일각 "강하성 라인 독주 막겠다"

국감이 '기관장 물갈이' 신호탄
청와대 "인위적 교체 없다" 했지만
여당 '방만 경영' 현미경 감사
인적쇄신 명분으로 활용할 듯

정부 부처 1급 인사 지연도 논란


[ 조미현/김형호 기자 ] 정부의 공공기관장 인선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공석으로 내각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한 데다 다음달 공공기관 대상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는 것이 1차적인 이유다. 현재 공석이거나 임기가 끝난 공공기관장 수는 50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개별 기관장 모집 과정에서 특정 인사가 지원을 철회하거나 기관이 특별한 이유 없이 후보 모집 기간을 연장하는 등 석연찮은 잡음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공공기관장 자리를 두고 ‘개국공신’끼리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국정감사가 ‘기관장 물갈이’ 신호탄?

29일 여권에 따르면 여당은 다음달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에 대한 현미경 검증을 벼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장 임기를 최대한 보장하되 방만 경영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당에서는 국정감사를 공공기관장 ‘인적 쇄신’ 카드로 활용할 움직임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선 캠프 공식 인사만 430여 명에 달해 논공행상이 없을 수 없다”며 “청와대가 인위적인 물갈이가 없다고 밝혔지만 당이나 캠프 출신 인사 중심으로 국정감사를 최대한 활용해 솎아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이미 기관장 인선 작업에 착수한 곳에서는 계파 간 ‘자리 다툼’이 치열하다. 정치권에서는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라인과 문재인 대선 캠프 라인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 기간에 대통령을 보좌해 온 캠프 출신들보다 장 실장처럼 외곽에 있다가 청와대로 들어간 참모들이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감지된다.

최근 한국거래소 이사장 공모를 놓고 장 실장 라인과 문 캠프 라인 간 ‘암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해석이 나왔다. 거래소가 마감이 끝난 후보 모집을 추가로 진행한 가운데 차기 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알려진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이 지난 27일 지원을 철회하면서다. 김 전 원장은 장 실장이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부산 출신인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과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김성진 전 조달청장 등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여당 안팎에서는 거래소의 추가 공모 전후로 금융을 잘 아는 부산 출신 인사를 물색하는 데 분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캠프 출신 한 인사는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거래소 이사장까지 장하성 라인이 차지하는 독주는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장 실장의 고려대·경기고 인맥이 경제금융 분야의 새 주류로 부상하면서 캠프 출신 인사들이 본격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친문(친문재인)계 의원은 “외부에서 영입된 교수 출신들이 인사에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캠프나 측근들은 눈치가 보여 인사에 적극 목소리를 못 내는 반면 교수 출신들은 인사 문제에 상대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1급 인사도 지연

한편 정부 부처 1급 인사도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에서는 2~3개 1급 자리가 수개월째 공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최소한의 인력으로 일일이 검증하고 있어 시간이 걸린다”며 “검증팀이 인사 대상자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미현/김형호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