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규제에 발목 잡힌 디지털 헬스케어

입력 2017-09-28 18:22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 이지현 기자 ]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사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시판 허가를 받아도 판매할 시장이 없다고 한다. 건강보험 진료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출시조차 못하고 해외 시장을 두드려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민간 연구모임인 창조경제연구회(KCERN) 주최로 지난 26일 열린 ‘디지털 헬스케어 국가 전략’ 정기포럼에서 나온 얘기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헬스케어 분야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하루빨리 규제를 풀고 정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김치원 서울와이즈요양병원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에도 건강보험 적용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진료비가 정해지지 않으면 의료기관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할 유인이 없다. 대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시스템 중 건강보험 진료비가 정해진 것은 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뿐이다.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은 “당뇨 관리 앱(응용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진료비를 받을 수 없다 보니 다시 돈을 들여 중국어 버전을 개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국내 환경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대응도 어렵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전쟁으로 불린다. 양질의 빅데이터가 쌓여야 각종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서비스 상용화가 늦어지면 그만큼 데이터 축적도 늦어진다. 빅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에 선제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규제도 기술 개발의 걸림돌이다. 일본은 지난 4월 익명화된 의료 정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반면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이 기초적인 의료 빅데이터 활용조차 막고 있다. 여당이나 시민단체 등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의료 영리화라며 반대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국내 업체들이 해묵은 논쟁에 발목 잡혀 있는 사이 해외 업체들은 기술 상용화를 통해 빅데이터 축적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