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 테마주’를 이용해 주가를 조종한 불공정거래자 33명을 적발해 이 중 29명을 검찰에 고발했거나 통보했다고 어제 발표했다. 대선 열풍 속에서 후보들과 관련한 과장 및 거짓 소문들을 퍼뜨려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작전세력들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금은 확인된 것만 157억원에 달했다.
작전세력들은 특정 후보와 특정 기업 대표가 친분이 있다는 허위 사실을 각종 증권 관련사이트 게시판에 올리거나, 대선 출마자와 관련된 사람을 임원으로 위장 영입하기도 했다. 당선 유력 후보의 공약에 따라 모 업체가 수혜를 볼 것이라는 풍문을 올려 주가를 띄운 경우도 있었다. 작전세력들의 전형적인 주가조작 수법 그대로였다.
정치 테마주가 증시를 뒤흔든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1997년 15대 대선을 전후로 언론에 처음 등장한 정치 테마주는 이후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북(對北)사업 관련주(15대 대선)’ ‘충청권 수도 이전 공약 수혜주(16대 대선)’ ‘한반도 대운하 관련주(17대 대선)’ ‘안철수 테마주(18대 대선)’ 등이 대표적이다. 세력들이 ‘묻지마 투기’를 부추겼지만 여기에 휩쓸린 투자자들도 문제가 있다.
기업 실적과는 상관없이 선거 시즌마다 후보들의 혈연(血緣), 학연(學緣), 지연(地緣) 등과 관련된 풍문과 후보들의 부침(浮沈)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증권시장은 한국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정상적인 국가라면 차기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밀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상당수 개인투자자들은 아직도 선거 결과가 특정 후보와의 관련설이 나도는 기업의 명운(命運)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권이 우리 사회 먹이사슬의 최상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잘나가는 기업도 정치권에 밉보이면 휘청거릴 수 있고, 권력을 잡은 정파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각종 이권청탁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의 의식을 높인다고 해도 후진적 정치관행을 개선하지 않으면 정치 테마주 소동은 되풀이될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