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문화예술 분야 사회공헌 활동 넓혀라

입력 2017-09-28 16:34
Let"s Master (5)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기업은 문화예술 진작을 위해 예술인의 현장 파견 확대하고

예술인은 기업의 경쟁력 위해 창조적인 파트너로 힘 보태야


미국 뉴욕 출장 중 휘트니미술관에 들렀을 때 일이다. 독일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리츠 케르델케 초상(Portrait Liz Kertelge)’(1966), ‘두 개의 양초, 덧칠된(Zwei Kerzen, ubermalt’(1989), ‘베티(Betty)’(1988), ‘루디삼촌(uncle ludi)’(2000) 등 평소 좋아하던 그림 진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작품을 마주하게 됐다. 다양한 색채가 뒤섞인 듯한 리히터의 추상화였다. 특이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이 울컥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느낌에 당황스러웠다. 15분 정도 꼼짝 못 하고 그림을 바라보며 눈물을 줄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추상화의 이미지에서 무슨 추억이나 아픔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어려웠으리라. 지금도 그 눈물의 의미를 모르겠다.

다만 예술 작품이 구체적인 이미지나 언어를 뛰어넘어 인간의 깊은 가슴에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마술 같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얻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실망스럽다. 최근 발표된 에델만신뢰도지표 조사에 따르면, 기업 신뢰도는 29%로 56%인 비정부기구(NGO)의 절반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호감도지수도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기업이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기업을 위해서나 우리 경제를 위해서나 시급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사회에 진정성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설득의 비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Rhetoric)》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세 가지 요소로 로고스(이성), 파토스(감성), 에토스(신뢰)를 이야기한다. 로고스는 논리와 증거를 지칭한다. 파토스는 상대방의 감성적인 요소를 의미한다. 에토스는 설득하려는 사람(화자)의 성품, 평판 등을 뜻한다. 그는 성공적인 설득을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의 비중이 로고스 10%, 파토스 30%, 에토스 60%가 황금비율이라고 했다.

사회공헌은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

기업이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공헌과 문화예술의 결합이 좋은 방편 중 하나다. 기업 사회공헌이 상대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라면 문화예술은 사람의 감성에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두 요소가 결합되면 설득을 위한 비중이 90%에 이른다. 물론 개념적인 접근이지만 기업 사회공헌과 문화예술이 어우러져 공익활동을 하게 되면 다른 사업에 비해 훨씬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메세나협회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활동 효과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인식’ ‘브랜드 인지도 증대’ ‘직원들의 사기와 만족도 증가’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이 광고, 이벤트 등에 비해 브랜드 파워 측면에서는 친숙도와 자긍심이 높고, 브랜드 개성 측면에서는 진실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문화예술을 통해 사회공헌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2016년 전경련 자료를 보면 전체 사회공헌 지출 중 문화예술·체육 분야가 16.4%로 취약계층 지원과 교육지원 사업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는 2026억원으로 작년보다 12.2% 늘었다. 몇 가지 사례를 보면 한화의 교향악축제와 한화클래식, 금호아시아나의 클래식 음악영재 및 아티스트 지원, 현대자동차의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저소득층 음악영재 발굴을 위한 ‘아트드림 콩쿠르’, 대학생을 위한 ‘H-페스티벌’, CJ의 복합공연장 ‘CJ azit’ 운영 및 인디뮤직 재즈 지원, 삼성의 미술관 운영과 악기은행, 소외 장르 지원, LG 롯데 등의 공연장 운영을 통한 공연 고품질화, 크라운해태의 국악 집중 지원, SK의 미디어아트센터 운영과 청소년 예술교육 등이 대표적이다.

경영전략 연계 윈윈모델 발굴해야

일부 기업은 문화예술이 지닌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내부 구성원에게 연결시키는 프로그램도 시도하고 있다. 영국 유니레버의 ‘캐털리스트(Catalyst)’는 시인 작가 배우 등이 임직원과의 워크숍을 통해 창의적 능력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제품개발센터에 시인을 합류시켜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감성적 직관을 주도록 한다.

문화예술을 통한 기업 사회공헌 트렌드는 전략적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 지원에서 기업 경영전략과 연계해 윈윈하는 방안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자체 기획한 사업이 68.7%나 되고, 자사 문화재단을 통한 지출이 45.4%에 이른다. 적절한 외부 파트너를 찾지 못한 기업의 고민이 엿보인다. 기업의 문화예술 사업 지속기간을 보면 일회성인 1년 미만 사업이 41.5%나 되는 데 비해 10년 이상 지속된 장기사업은 13.3%에 불과하다. 전략 적 사업 모델을 찾아가는 시행착오 과정으로 해석된다.

기업과 문화예술의 만남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 현장에 예술인을 파견하는 사업을 확대해 상호이해를 높이고, 기업 전략에 부합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이 메세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혀주고 예술단체와 예술가가 수혜자 입장에서 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의 지지와 지원은 필수적이다.

문화예술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경영 환경에서 우리 기업이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신뢰와 창의성을 지원하는 중요 영역이다. 지원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해야 할 고마운 파트너다.

김도영 < CSR포럼 대표 dykim99@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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