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라의 청춘극장] 탈북자 아이폰 수리공 '서강잡스'…"기회 많은 美유학 가고파"

입력 2017-09-22 11:06
北에서 온 '꼬마 수리공', "스티브 잡스 되고파"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 젊은이들이 창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템 선정부터 창업 실패에 따른 리스크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죠. 한경닷컴이 새롭게 선보이는 [조아라의 청춘극장]은 성공한 젊은 창업가들의 실전 스토리를 담아내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이들의 좌충우돌 도전기가 예비창업가들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아이폰 수리업체 '서강잡스' 대표 김학민 씨(31·서강대)는 2011년 한국으로 넘어온 새터민(탈북자)이다.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전자제품을 많이 접한 덕에 전자기기에 관심을 가졌다. 중학생 때부터 시계, TV, 비디오 플레이어, 녹음기 등을 닥치는 대로 뜯어고쳤다. 관심사를 살려 대학 전공 역시 전자공학과로 선택했다.

아이폰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리한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 퍼지면서 김 씨는 스티브 잡스의 이름을 본떠 '서강 잡스'라 불리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수리 의뢰 때문에 휴학까지 했다. 2015년 말 학교 인근에 저렴한 가게를 구해 아예 아이폰 수리업체 '서강 잡스'를 운영 중이다.

그의 사업이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감옥에 끌려가기도 했고…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죠.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왔지만 함께 목숨 걸고 탈북했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홀로 남았습니다.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남한에 혼자 버려진 느낌에 탈북한 걸 잠시 후회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많이 방황했습니다."


탈북자가 필수로 거쳐야 하는 하나원(새터민 교육기관) 퇴소 이후에도 김 씨는 방황을 거듭했다. 1년간 식음 전폐 수준으로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에 누워지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장에서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발견했다.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친구가 "잡스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며 준 것이었다.

"잡스의 전기를 읽으면서 너무 감명 받았어요. 잡스의 명언, 살아온 환경 등 모든 것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죠. 잡스처럼 멋진 사람이 되려면 대학부터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을 다잡고 준비해 2014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어요."

하지만 대학 동기들에 비해 나이가 7~8살이나 많은 데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어울리기 힘들었다. 하다못해 연예인 이름도 하나 몰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됐다. 외로운 시절이었다.

그가 학교 유명인사가 된 것은 우연히 아이폰4의 액정이 깨지면서부터다. 고액의 수리비가 부담돼 직접 부품을 사 수리를 했다. 그 모습을 본 기숙사 룸메이트가 깜짝 놀랐다. 서강대생 사이에서 '아이폰 수리 능력자'로 입소문이 퍼진 계기였다.


"처음부터 사업을 하겠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친구들이 도움을 청해오니 해준 것이지요. 점점 수리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루에 30명이 몰릴 때도 있었어요. 고민 끝에 잠시 휴학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학내 유명인사가 되니 자연스럽게 학교생활도 즐거워졌다. 전에는 못 느꼈던 소속감도 느끼고 친구들이 많아졌다. '서강 잡스' 설립 자본금 500만 원도 학과 학생회와 지인들이 돈을 모아 지원받았다. 이들에게 진 '빚'은 한 달 만에 수리해서 번 돈으로 모두 갚았다.

인터뷰를 하는 한 시간 사이에 찾아온 고객만 10명. 평균 수리 시간은 5~10분. 휴대폰 액정이 깨지거나 침수되는 등 고장난 이유는 다양했지만 김 씨는 뚝딱 고쳐냈다. 그가 수리하는 아이폰만 한 달에 300대 이상이다.

그에게는 최근 새로운 꿈이 생겼다.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다. 최신 기술은 물론, 다양한 인종, 문화를 존중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분위기도 경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창업 붐과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방문해 직접 최신 기술을 접하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이미 몇몇 업계 관계자와의 미팅 약속도 잡혀 있어요. 다음 달에 태어나서 처음 미국에 가는데 기대됩니다."


"사실 북한에서도 기술이 있으니 먹고 살 수는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드라마에서 본 한국이 너무나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지금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싶은 생각이 많아요. 미국에 가서 더 많은 걸 배워 제가 하고 싶은 개발을 해보고 싶어요."

이 때문에 앞으로 사업은 직원에게 맡기고 대학부터 졸업할 생각이라고 했다. 미국에 유학 가서 석사 과정을 밟거나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다.

그는 절망적이었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희망'과 '꿈'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에서 가족을 잃었을 때, 배고플 때, 감옥 갈 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절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죠. 힘들어도 버터내면 다시 도약하는 힘이 크다는 걸 저는 누구보다도 잘 알거든요."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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