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통업체들이 '아마존 정글'서 살아남는 법

입력 2017-09-20 19:45
수정 2017-09-21 05:00
"적과의 동침" 택한 콜스, 82개 매장서 아마존 반품 접수
"한번 해보자"는 월마트, 온라인 매장 확대·배송 강화
"이길 수 없다"는 토이저러스, 매출 곤두박질…파산보호 신청


[ 뉴욕=김현석 기자 ] 아마존은 더 이상 단순 전자상거래 업체가 아니다. 모든 산업계의 상식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됐다.


CNBC에 따르면 지난 7~8월 2분기 실적 발표 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중 67개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아마존에 우려를 나타냈다. 업종도 소매유통뿐 아니라 소비자용품, 자동차부품, 제약 등 다양했다. 이는 아마존이 진출하면 그 분야 기업은 매출이 급감하는 등 큰 타격을 입고 있어서다.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곳은 소매유통업계다. 올 들어 미국에서 파산을 신청한 유통업체는 토이저러스를 비롯해 페이리스슈소스, BCBG맥스아즈리아그룹, 리미티드스토어스 등 25개로 전년 동기(11개)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소매유통업계는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략은 갖가지다. 아마존에 ‘투항’하는 곳도 있고 ‘혈투’를 선택하거나 가만히 있다가 ‘자멸’하기도 한다.

◆투항형: 콜스 홀푸드

미국 백화점 체인 콜스(Kohl’s)는 다음달부터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 일대 82개 매장에서 아마존 상품의 반품을 접수 처리한다고 1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콜스는 반품을 위한 포장을 무료로 해주고, 반품 고객을 위한 주차 공간도 마련하기로 했다. 아마존 상품을 반품하러 온 손님이 콜스에서 물건을 살 것을 기대해서다. 이는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맞서기보다 차라리 손잡고 실익을 챙기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 협업이 양사 모두에 매출 증대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콜스는 이달 초에도 10개 매장에 92㎡ 규모의 아마존 인스토어 매장을 설치해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 등을 판매하기로 아마존과 합의했다.

홀푸드는 아예 아마존에 투항한 형태다. 신선한 유기농 제품을 팔아 부유층 고객이 많이 찾던 홀푸드는 2~3년 전부터 어려움을 겪어왔다. 월마트, 코스트코, 크로거 등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유기농 시장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들로부터 압박받던 존 매케이 홀푸드 CEO는 ‘아마존이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뉴스를 접하자 바로 아마존에 사실 여부를 문의한 뒤 회사를 넘겼다. 매케이 CEO는 인수 협상이 이뤄진 수개월을 ‘폭풍 같은 로맨스’라고 표현했다.

미국 투자은행(IB) 업계엔 홀푸드 인수가 발표된 6월 이후 의류와 식료품, 편의점 업체로부터 “아마존에 인수 의사를 물어봐달라”는 요청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투형: 월마트 베스트바이

월마트, 베스트바이는 아마존과의 맞대결을 택했다. 월마트는 작년 8월 전자상거래 업체 제트닷컴을 33억달러에 인수한 뒤 창업자 마크 로어에게 온라인 판매를 맡겼다. ‘아마존 킬러’로 불려온 로어는 온라인 매장을 확대하고 배송을 대폭 강화했다. 아마존에서 이틀 내 무료배송을 받으려면 프라임 회원(연회비 99달러)에 가입해야 하지만 월마트는 올해부터 35달러 이상이면 이틀 내 무료배송을 해준다.

이를 위해 월마트 직원이 퇴근길에 주문 상품을 소비자에게 배송해주는 퇴근배송제, 우버·리프트 등 차량공유업체와 제휴해 식료품을 배달하는 서비스 등을 도입했다. 온라인 시장 공략에 힘입어 월마트의 2분기 매출은 2.1% 늘었고, 이 중 온라인 매출은 60% 뛰어올랐다.

월마트는 협력사에 아마존의 주요 수익 창출원인 클라우드 서비스(AWS·아마존웹서비스)를 쓰지 말라고 압박하는 등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영업이익 대부분을 AWS에서 거두는 아마존으로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베스트바이는 사업 전략을 바꿔 성장세를 회복했다. 휴버트 졸리 CEO는 상당수 품목 가격을 내린 뒤 아마존 가격과 병기해 판매하고 있으며, 온라인 주문 물품의 매장 수령 및 반품도 쉽게 바꿨다.

◆자멸형: 토이저러스 JC페니 메이시스

대부분의 유통업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멸하고 있다. 아마존이 워낙 막강해서다. 지난 18일 파산보호를 신청한 토이저러스가 대표적이다. 토이저러스는 아마존에 뒤처지고 모바일게임 등에 밀려 매출이 5년 연속 감소하면서 파산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부자 고객에 안주해온 백화점 업계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올 2월 기준 JC페니는 매장의 14%인 140개 점포를 정리했으며, 메이시스는 100개(15%), 시어스는 150개(15%)를 폐점했다. 노드스트롬은 실적 부진에 상장을 폐지하고 비상장회사로 전환한 뒤 회사 매각 등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럭셔리 백화점인 니만마커스는 중저가 시장 개척을 위해 만든 라스트콜 매장의 4분의 1을 문닫을 방침이라고 13일 발표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