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신영 기자 ]
손해보험협회는 이익단체다. 손해보험사들이 건전한 발전을 위해 매년 회비를 거둬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1946년 설립된 이후 민간 출신 회장은 태평양생명 출신의 이석용 전 회장(1992년 취임),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 출신의 박종익 전 회장(1998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출신의 장남식 현 회장 등 세 명뿐이었다. 대부분은 경제관료 출신이 회장을 맡았다.
과거 관료 출신이 협회장으로 오는 데는 명분이 있었다. 규제 산업인 보험업을 잘 영위하기 위해서는 정부 및 감독당국과의 소통이 필요한데 관료 출신이 그 역할에 적합하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틀린 말은 아니다”고 말한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관료 출신 회장들이 네트워크를 활용해 손보사들에 필요한 제도 도입에 앞장서기도 한다”고 전했다.
상반된 시선도 있다. 각 협회장은 결국 퇴임한 관료의 ‘재취업 자리’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퇴임하는 선배 관료를 위해 현직 관료들이 발벗고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정부는 협회장의 임기 만료 시점이 다가올 때마다 차기 회장에 대한 의견을 직·간접적으로 보험업계에 전달했다.
각종 규제를 받는 보험사들로서는 이 같은 관료들의 의지를 막아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자동차보험부터 실손보험까지 보험료 인하 압박을 하고 있어 정부에 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게 손보업계의 공통된 반응이다. 손보협회가 20일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회장추천위원회의를 연 뒤 “민·관 출신에 상관없이 차기 회장 후보를 물색해 추천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관료 출신도 회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장 회장이 민간 출신임에도 뽑힐 수 있었던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여파로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질타하는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큰 희생을 계기로 전문성 있는 민간 출신 협회장을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였다. 손보사들이 이처럼 어렵게 얻어낸 협회장 선출권을 관료들의 재취업을 위해 다시 내놓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