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7월 표준산업분류 바뀌며 '기타금융업종'으로 변경
의결권 행사 원칙적 제한
공정위 세 차례 공문 받고도 이의절차 제기하지 않아
국회서 문제 불거지자 뒤늦게 관련법 개정 나서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 임도원 기자 ]
“통계청이 고시 개정 과정에서 세 차례나 공문을 보내 의견조회를 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문제가 벌어집니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에게서 이 같은 질책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부터 바뀐 통계청의 표준산업분류 고시로 인해 달라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정을 손보지 않아 지주회사의 의결권 행사가 불법이 돼버린 혼란을 지적한 것이다.
통계청은 지난 1월 지주회사의 업종을 서비스업에서 금융 및 보험업으로 바꾸는 내용의 표준산업분류를 고시했다. 지주회사를 금융회사로 분류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조치라는 설명이었다. 지주회사가 금융회사로 분류되면 대기업은 원칙적으로 자회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가 금지된다.
공정거래법 11조에서는 대기업집단에 속한 금융회사가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에 임원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합병 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그것도 다른 특수관계인 주주들과 합쳐 총지분율 15%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예컨대 SK건설 지분은 지주회사 SK(주)가 44.48%, 다른 계열사들이 총 28.49%를 들고 있지만 공정거래법 11조를 적용받으면 바뀐 표준산업분류상 SK(주)는 금융회사로 분류돼 계열사에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예외 사안이라 하더라도 15%를 초과한 나머지 계열사를 포함한 57.97% 지분은 활용할 수 없게 된다.
공정거래법에서는 금융회사인지에 대한 판단은 표준산업분류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통계청은 고시하기 전인 지난해 공정위에 세 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내 의견을 조회했다. 그러나 공정위에서는 이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고시 후에도 바뀐 표준산업분류를 반영한 공정거래법 개정에 나서지 않았다. 결국 지난 7월1일 고시가 시행되면서 SK LG 등 20개 대기업 지주회사들이 공정거래법 11조를 적용받게 됐다.
이를 뒤늦게 파악한 공정위는 여당 의원(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한 ‘청부 입법’으로 7월19일 지주회사를 금융회사로 분류하지 않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처리되기 전까지는 대기업 지주회사들이 계열사의 주요 경영 사안에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업계 일각에선 이 틈을 타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에 의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통계청에서 보낸 공문에서 관련 내용을 주요사항으로 표시하지 않거나 부록에 담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며 “공정거래법 11조는 강행규제가 아니어서 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민사상으로 무효 또는 취소를 시킬 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공정위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현행 법조문으로는 11조가 강행규제가 아니라고 확언할 수 없고 관련 판례도 없다”며 “적대적 세력이 지주회사의 의결권 행사에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회사들은 큰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21일 대기업 사건을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을 신설한다. 60명의 대규모 인원이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등을 집중조사할 방침이다. 어이없는 실수로 대기업의 경영권에 불안을 안긴 공정위가 과연 제대로 낯을 들고 조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