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미국은 미국식 경영관리, 일본은 일본식 경영관리가 있듯이, 중국에서는 중국식 경영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아래의 사례는 이런 중국식 경영관리의 특징을 소개한다.
갑과 을, 두 회사는 비록 사소한 갈등은 있었으나 10여 년간 성공적으로 합작회사를 운영해왔다. 그러던 중 계약서를 작성해야 글로벌 추세에 맞다고 의견 일치를 봤다. 그런데 계약서를 만들면서 오히려 주주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 “계약이 없을 때에는 서로가 양심에 따랐기 때문에 일이 있어도 협의하기가 좋았다. 그런데 계약서를 만들려니까 모든 일을 가장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나만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계약하고 난 뒤에는 법에 따라 처리하려니 양심에 따를 수도 없었다.” 계약에 대한 중국인의 관념이 보인다.
계약보다 계약 당사자가 중요
물론 “먼저 깐깐하게 따지고 나중에 서로 좋은 인상을 남기자(先小人而后君子)”며 계약을 챙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국인과의 사업 및 협상에서는 계약서보다 아는 이들끼리의 ‘신뢰’가 더 중시되고 믿을 만한 사례가 많다. 단순하지 않은 거래일수록, 민감할수록, 복잡할수록 계약서는 오히려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씨(白黑字)’에 불과해진다. 인간관계에 더욱 신뢰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중국인의 가치관에 어울린다. 인간관계, 즉 친구는 믿어라. 단 그전에 진짜 친구인지는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중국과의 거래가 매우 불안하던 시절이 있었다. 은행의 신용장을 받고도 조심스러웠을 때다. 한번은 중국 대형기업으로부터 수백만달러를 훌쩍 넘는 초대형 거래를 제안받았다. 거래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 때쯤 대금을 지급하는 주체(즉 신용장을 개설하려는 회사)가 홍콩에 있는 아주 작은 회사임을 알게 됐다. 외관상으로는 신용 조사를 할 필요도 없을 만큼 작은 회사였다.
추천인은 추천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
거래에 대해 내가 불안한 내색을 하자 중국 회사 사장은 홍콩 회사 사장을 불러내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식사는 그다지 거창하지도 않았고 업무에 대한 얘기도 전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단순 사업 관계가 아니라 ‘오랜 친구’라고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거래는 무사히 잘 마쳤다. 후에 홍콩의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 “네가 우리와 진행하는 데 불안했던 거 잘 안다. 그런데 거래의 성사는 회사 규모가 아니다. 이걸 알아야 중국 비즈니스를 잘할 수 있다.” 당시 나는 이런 이들의 ?시와 배경을 확인할 만한 실력이 없었다. 운이 좋아서 진짜를 만날 수 있었기에 (나와 같은 이유로 불안해한 경쟁사를 제치고) 비즈니스를 성사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운이 늘 따라주길 기대할 수는 없다. 검증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한·중 양국을 망라하는 인맥을 자랑하는 이가 있었다. 소개받는 장소에 나갔는데 뜻밖에도 공안 계통의 고위층 인사가 합석해서는 “내 조카이니, 잘 봐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상황설명만 들어봐도 사기꾼 같았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 자신의 조카라고 말한 고위층을 만났다(인맥 검증은 내 업무 중 하나였다). “나도 그 친구 잘 모르지. 당신들 오기 10분 전에 처음 만났다. 좋게 말해달라고 부탁하기에 그리 얘기했다.” 어이없지만 이런 사례는 그야말로 차고도 넘친다.
검증은 가능한 한 직접해야
‘인맥’이 아쉬울 때가 많다. 그래서 때때로 ‘능력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에서 사람을 추천받을 때에는 상당한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모 그룹 회장이 중국의 고위층 인사에게 “좋은 인재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 고위층은 “내가 아끼는 인재”라며 A를 직접 소개했다고 한다. 최고의 조건으로 채용했지만, A는 그만한 능력도 없었을 뿐 아니라 고위층과의 친분 역시 매우 과장된 것이었다.
‘神容易送神(귀신을 불러오기는 쉽지만, 보낼 때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아니다 싶지만 쉽게 내칠 수도 없다. 추천인이 ‘내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끼게 되면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害人之心不可有, 防人之心不可无(남을 해하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되지만, 조심하는 마음은 없어서는 안 된다). 진짜라고 확인하고 나서 신뢰를 줘도 늦지 않다. 검증할 능력이 없다고 포기하면 절대 안 된다. 하다 보면 느는 게 실력이다. 직접 하다 보면 방법도 터득하게 되고 안 보이던 것도 볼 수 있게 된다. 스스로 중국통이라고 자부한다면, 조직에서 그런 위치에 있다면 제발 한 번만이라도 ‘직접’ 검증해보시라!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