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있는 제품 처리비용 생산과정서 바로잡으면 1
시장에 그대로 나가면 10 고객 손에 들어갈 땐 100"
철저한 품질관리로 고객사 설득
올해부터 실적 가파른 상승
"삼성 내 위기극복 CEO로 주목"
[ 좌동욱 기자 ] “높이 나는 새는 포수가 쏜 총에 절대 맞지 않습니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사진)이 최근 임원회의에서 강조한 발언이다. 차별화된 기술력만 갖추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이를 듣는 삼성SDI 임원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전 사장이 취임 이후 6개월여 동안 삼성SDI의 체질을 바꿔놓는 현장을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다.
“품질은 기술력의 원천”
전 사장이 삼성전자의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을 맡고 있다가 지난 3월 삼성SDI 사령탑으로 부임했을 당시 회사는 지난해 9월 발생한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의 역풍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취임 직후 받아본 지난해 영업손실은 무려 9263억원. 전년 영업손실(2675억원)의 세 배 이상에 달하는 것이었다.
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모회사인 삼성전자까지 삼성SDI 배터리에 불신을 드러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사장 부임 직전 삼성SDI의 중국 톈진 배터리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가 없고 폐기된 배터리에서 발생한 단순 화재였지만 삼성SDI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는 글로벌 고객들이 적지 않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전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임직원들에게 “첫째도 품질, 둘째도 품질, 셋째도 품질”을 강조했다. 사내 임직원들을 모두 모아놓고 ‘1: 10: 100의 원칙’을 설파했다. “제조 과정에서 하자를 파악해 바로잡으면 1의 비용이 들고, 시장에 문제가 있는 제품이 나가면 10의 비용이 들며, 문제가 있는 제품이 고객 손에 들어가면 100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지난 5월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품질보증실을 신설하고 이 부서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배터리 소재와 완제품의 품질만 들여다보는 부서다. 이를 통해 개발, 제조, 검사, 출하 단계별 품질 검증 기능을 강화했다. 샘플 제품에 대한 엑스레이(X-ray) 검사는 전수 조사 방식으로 확대했다.
WSJ도 “저평가된 우량주”
전 사장의 고강도 품질관리에 고객사들도 불안한 눈초리를 거두고 전략 제품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SDI가 지난 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선보인 ‘다기능 배터리 팩’은 완성차업체들이 가장 눈여겨본 배터리 기술로 꼽혔다. 이 제품은 모듈 20개를 장착하면 600㎞를 주행하고, 10개를 장착하면 300㎞를 달리는 방식으로 전기차 주행 성능을 손쉽게 바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실적도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증권사들은 올해 삼성SDI의 영업이익이 193억원(평균 추정치)으로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선 이후 2018년 2746억원, 2019년 4351억원 등으로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이 삼성SDI를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를 극복한 기술 우량주”로 투자자들에게 소개할 정도다.
전 사장을 바라보는 그룹 내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메모리사업부에서 승승장구하던 전 사장이 삼성SDI로 전보된 것은 위기에 처한 삼성SDI에 구원투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일한 그룹 사장단 인사였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선 “내부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얘기들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역대 삼성SDI 사장들이 크고 작은 고초를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전 사장이 어려운 회사를 맡아 꼼꼼한 관리능력과 위기돌파 역량을 선보이면서 일약 그룹의 간판 경영자급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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