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압박에 신음하는 기업들
석탄화력 건설 중인 9곳에 "LNG발전으로 전환해달라"
매몰비용·보전책은 없어
건설비용 대거 쏟아부은 포스코에너지 등 발전사들
"사업무산 땐 회사존립 위태"
"지역 활성화·일자리 위해 석탄화력 예정대로 추진해야"
해당지역 주민들 항의 집회
[ 고재연 기자 ]
정부가 건설을 추진 중이던 석탄화력발전소를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로 전환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민간 발전사업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2조8600억원에 달하는 매몰비용과 LNG 발전소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비용 보전책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으로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한 지역사회에서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반발하며 항의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허가권 볼모로 업계 압박?
17일 민간 발전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강원 삼척과 충남 당진에서 화력발전소 건립을 추진 중인 포스코에너지와 SK가스 등에 “LNG발전소 전환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석탄발전사업이 진행 중인 곳은 경남 고성, 강원 강릉, 삼척, 당진, 충남 서천 등 다섯 개 지역 아홉 개 발전소다. 이 중 삼척과 당진 두 곳은 포스코에너지와 SK가스가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착공 허가를 받지 못했다.
LNG발전소로 전환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매몰비용과 전환비용이다. 포스코에너지는 삼척화력 1·2호기 건립을 위해 2014년 사업권을 사들인 뒤 법인 설립 및 플랜트 설계, 환경영향평가 용역비용 등으로 이미 5586억원을 투자했다. 또 사업 취소 시 부지 복구비는 700억여원에 이른다. 지난 상반기 영업이익이 977억원에 불과한 이 회사의 자금 사정으로는 버거운 규모다. SK가스 역시 당진 에코파워 1·2호기 건립을 위해 4132억원을 투자했다. 포스코에너지 관계자는 “정부가 매몰비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화력발전소 건립 사업이 무산되면 손상차손 발생으로 자본잠식, 차입금 상환 요구,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회사 존립이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허가가 안 난 사업을 계속 진행하기도 어렵다. 정부가 ‘탈(脫)원전·탈석탄’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지난 6월 말까지였던 착공 허가 기한을 올해 말까지로 연장했다. 민간 발전업계는 “현재 분위기에 비춰볼 때 업체들이 사업 지속을 고수하면 산업부는 허가를 안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책 지속성 믿을 수 있나
이런 상황에서 산업부는 “LNG발전소 전환은 기업 자율로 결정하는 것인 만큼 정부 차원의 비용 지원은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신 환경영향평가 등 LNG발전소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고, 인허가 업무 등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소를 LNG발전소로 전환하려면 입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두 발전소의 입지 조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운반 비용 및 환경문제로 대부분 해안에 들어선다. 이에 비해 LNG발전소는 가스 배관이 도시까지 깔려 있어 대부분 도시 인근에 건설된다. 이 기준대로라면 삼척 강릉 등지는 LNG발전소를 세울 적격지가 아니다. 발전 방식을 바꾸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업계는 5년 뒤에 들어서는 또 다른 정부가 지금 정책을 뒤집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발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권 교체 때마다 정반대로도 바뀌는 에너지 정책을 어떻게 믿고 LNG발전소로 전환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지역사회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삼척 지역 주민들은 지난달 29일 정부세종청사를 방문해 삼척화력발전소 건설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병호 삼척상공회의소 부장은 “삼척화력발전소는 지역 주민 96.8%가 찬성해 추진하던 사업”이라며 “발전소 건설이 무산되면 몇 년간 1500~3000개의 건설 일자리가 사라지고 지역경제도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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