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4개국 예술 기행
황금빛 클림트의 '키스'…황홀의 극치를 만나다
베토벤의 '월광' 울리는 거리…곳곳에 숨은 동상 찾아볼까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글루미 선데이' 의 그 도시
동유럽 여행의 주제는 다양하다. 문화면 문화, 역사면 역사 어느 주제를 따라가도 여행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음식과 와인을 테마로 잡아도 좋다. 하지만 역시 동유럽 여행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예술 아닐까. 빈과 프라하, 부다페스트를 따라가며 느끼는 동유럽 예술의 향취는 잊지 못할 감동과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최근 떠오르는 여행지 브라티슬라바도 일정에 넣어보자. 빈에 뒤지지 않는 놀라움을 선사할 것이다.
보헤미안의 감성 가득한 체코 프라하
지금의 체코 서쪽에 보헤미아 왕국이 있었다. 우리가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는 자유롭고 낭만적인 민족의 땅이었다. 프라하는 이 보헤미안의 수도였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보헤미안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핍박과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들이 사랑하는 음악과 춤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잊어버리지 않았다. 이 보헤미아의 감성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작곡가가 바로 스메타나다. 그는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보헤미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스메타나는 프라하에서 음악공부를 하다 1848년 일어난 혁명운동에 큰 감화를 받고 체코 민족음악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평생 체코 민족의 정서를 담은 음악을 작곡하는 데 온 힘을 쏟은 그는 6곡으로 이뤄진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Ma Vlast)’을 작곡한다. 1883년 작곡한 이 교향시는 비셰흐라드(Vysehrad), 블타바(Vltava), 사르카(Sarka),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 타보르(Tabor), 블라니크(Blanik) 등으로 구성돼 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들으며 아침 해뜰 무렵 카를교에 서보자. 유유히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을 바라보며 ‘나의 조국’ 2악장 ‘블타바’를 듣다 보면 뭔가 가슴속에 뜨거움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놀라운 사실은 스메타나가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한 것은 그의 나이 50세 때였는데 그는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체코인들은 스메타나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5월12일부터 약 3주간 ‘프라하의 봄’ 행사를 연다. 1946년 종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상임지휘자였던 라파엘 쿠벨릭이 시작한 축제다. 이 축제가 열리는 오베츠니 둠은 프라하 시민들의 성금과 알폰소 무하, 카렐 슈필라, 얀 프라이슬러 등 당시 체코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동참으로 세워졌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연주되는 스메타나 홀은 1918년 10월28일 체코슬로바키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공식 선포한 장소이기도 하다.
스메타나뿐만 아니다.
드보르자크와 모차르트도 프라하를 주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프라하를 찾은 여행자들은 프라하 곳곳에서 이들의 숨결과 조우하게 된다.
천재 화가 클림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빈
빈은 동유럽 예술여행의 시작이자 하이라이트다. 한때 유럽을 제패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근·현대 미술 소장품이 온 도시에 가득 차 있다. 미술사박물관, 레오폴트미술관, 알베르티나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등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들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을 즐길 수 있다.
빈에 도착한 예술 애호가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이 벨베데레 궁전이다. 이곳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명한 그림인 ‘키스’가 걸려 있다. 자유로우면서도 혁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그는 1897년 구태의연한 예술 전통과의 결별을 선언하며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를 창단했다. 리더였던 그는 순수예술과 디자인, 음악, 건축 등이 조화를 이루는 예술을 지향하며 제자 에곤 실레 등과 함께 이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클림트는 외설 시비에 휘말리며 주류 화단과 멀어지는데 이는 오히려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의 대표작인 ‘키스(Kiss, 1907년)’가 탄생한 것이 바로 이때다. 키스는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진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보헤미아 출신 귀금속 세공사인 아버지에게 영향받은 것이다. 그림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서 어떤 이는 황홀의 극치를 보여주는 표정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키스를 강렬하게 거부하는 자세라고 설명한다. 키스 앞에 서서 자신만의 해석을 내려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오스트리아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오직 오스트리아에서만 원작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이 작품 앞에 서는 것은 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알베르티나미술관도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다. 신디 셔먼과 모리야마 다이도 등 현대 사진의 거장들 작품을 오리지널 프린트로 만나볼 수 있다. 프라터 거리에도 들러보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작곡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집도 있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아스 카네티, 영화 ‘카사블랑카’의 음악감독 막스 슈타이너도 이 거리에서 살았다.
무지크페라인에서 듣는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감동이다.
빈필이 들려주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는 음반으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국립오페라극장에는 3~4유로짜리 입석도 많아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도 부담 없이 공연을 볼 수 있다.
베토벤과 리스트 숨결 느껴지는 브라티슬라바
브라티슬라바는 생소한 도시다. 예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했지만 슬로바키아가 독립하면서 수도가 됐다.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폴란드에 끼인 지리적 위치 때문에 ‘유럽의 배꼽’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켈트족과 로마인에 의해 도시가 만들어졌고, 8세기 이후 슬라브족이 정착하면서 도시다운 도시로 성장했다. 한국인에게 여행지로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알음알음 찾는 여행자가 늘고 있다.
브라티슬라바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수도다. 시내라고 해야 차로 2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대표적 여행지는 성 마틴 성당인데, 헝가리가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아 천도할 당시 헝가리 왕의 대관식을 치렀던 곳이다. 이후 1526~1784년까지 약 250년 동안 헝가리 왕가가 머물게 된다.
인구 50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지만 이 도시가 지닌 음악적 역량과 역사의 찬란함은 눈부시기만 하다. 50㎞ 정도 떨어진 빈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베토벤이 그의 걸작 ‘월광’을 작곡한 곳이 이곳 브라티슬라바다. 베토벤은 장엄미사를 이곳에서 초연하기도 했다. 천재 피아니스트 리스트 페렌츠가 9세에 경이적인 피아노 실력을 선보여 많은 사람의 박수 갈채를 이끌어낸 곳도 브라티슬라바다.
벤투르스카 골목의 데 파울리(De Pauli, 11번지) 궁 외벽에는 리스트를 기념하는 명판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9세에 이 연주회를 발판으로 개선의 길을 걷기 시작하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6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리스트는 9세 때 이 궁전에서 첫 연주회를 열며 천재의 탄생을 알린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완전한 음악교육을 시킬 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귀족들은 즉시 기부금을 모았고 더 나아가 그를 6년간 재정적으로 후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요한 네포무크 후멜도 브라티슬라바 출신이다. 올드 타운의 관광안내소 건물이 그가 태어난 곳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모차르트에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유럽 여러 곳에서 활동하며 피아노의 거장으로 칭송받았지만 이상하게도 사후에 거의 잊혀지고 말았다. 생전에는 베토벤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작곡가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구시가지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동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벤치 뒤에서 관광객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나폴레옹, 벽 뒤에 숨어 사진을 찍는 파파라치, 그리고 중절모를 벗어 정중하게 인사하는 노신사 등 유머러스하고 익살스러운 동상이 여행자들을 미소짓게 한다.
가장 인기 있는 동상은 맨홀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맨홀맨인 ‘추밀(Cumil)’.
브라티슬라바를 찾은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맨홀맨 옆에 엎드려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 자세히 보면 추밀의 머리가 반질반질한데, 이는 추밀의 머리를 만지면 행복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하면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음악이 있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이다. 1935년 헝가리의 무명 작곡가 레조 세레스는 연인인 헬렌에게 실연당한 아픔을 담아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썼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일까? 음반이 출시된 지 8주 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의 자살자가 나오고 세계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이 노래를 들으며 목숨을 끊었다. 레조 세레스 역시 자기 노래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자살했다고 한다.
롤프 슈벨 감독은 이 믿기지 않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제작했다. 영화는 자보와 일로나 그리고 안드라스라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부다페스트의 미로처럼 좁은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던 일로나의 모습과 그녀를 바라보던 안드라스의 강렬한 눈빛 그리고 영화 내내 흐르던 치명적인 피아노 멜로디가 머릿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당신을 잃느니 당신의 반쪽이라도 갖겠소”라던 자보의 안개 같은 목소리도 골목 저편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부다페스트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이자 부다페스트의 상징인 세체니 다리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된 곳. 밤에 불을 밝히는 전구가 멀리서 보면 사슬처럼 보인다고 해서 세체니(사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다뉴브 강을 연결하는 8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현대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키라리 거리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작은 골목에는 멋진 펍이 몰려 있는데, 이들 펍은 ‘루인 펍(Ruin Pub)’으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로 남은 건물을 펍으로 개조한 것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몰려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가장 유명한 곳은 ‘심플러’라는 곳으로 그래피티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기이한 분위기를 더한다.
‘브로디 하우스’는 호텔 겸 게스트하우스다. 영국인 윌리엄 클로디어와 스웨덴 출신 젊은 디자이너 피터 그룬드버그가 운영한다. 부다페스트에 반해 8년 동안이나 머물던 이들은 브로디 거리의 유서 깊은 건물 한 층을 구입했고, 그곳을 온갖 디자인 제품으로 가득 채웠다. 방뿐만 아니라 계단과 리셉션에도 작품을 전시한다.
‘X6갤러리’는 사진 거장 만 레이의 작품을 비롯해 유명작가 160명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비롯해 리미티드 에디션 등 무려 16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헝가리 사진가들의 인큐베이터 및 허브 역할도 하고 있고 다양한 사진집을 싸게 판매한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글·사진=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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