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내일'이란 인류에게 내려진 최고의 축복이자 저주

입력 2017-09-14 19:31
수정 2017-09-15 05:45
미래중독자

다니엘 S. 밀로 지음 / 양영란 옮김 / 추수밭 / 324쪽 / 1만6800원


[ 서화동 문화선임 기자 ]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에서 신장 1m, 두개골 용적 380㏄의 여성 유골이 발견됐다. 함께 발견된 12명의 유골 크기도 비슷했다. 학자들이 특히 주목한 건 두개골 크기였다. 호모사피엔스나 네안데르탈인의 3분의 1도 안 되는 뇌 용량으로 긁개와 모루, 끌 등 각종 석기를 만들어 썼다. 불도 익숙하게 사용했다. 전혀 새로운 인류 종인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또는 ‘호빗’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뇌 용량이 400㏄ 안팎인 호빗이나 1000㏄ 정도인 호모에렉투스가 비슷한 석기와 불을 사용했다면 뇌 용량이 크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진화의 증거가 될까.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다니엘 S 밀로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미래중독자》에서 커진 뇌 용량은 인간에게 이점보다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호모사피엔스의 뇌는 몸 전체가 필요로 하는 열량의 22%나 소비하기 때문이다. 영장류의 3배, 포유류의 5배쯤이나 된다.

뇌가 커지는 초기에는 도구와 불의 사용으로 이어져 인류의 번성을 가져왔으나 그 다음 단계에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해 인구가 늘지 않고 정체됐다. 뇌 용량의 지나친 확대는 인간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었다. 인류에게 만성적인 영양 부족과 난산, 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긴 유년기로 인한 높은 영유아 사망률 등을 초래해서다.

이 때문에 진화론이나 자연선택설로는 이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연은 결코 더 효율적인 방향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환경에 맞게 혁명적으로 진화한 적자만 생존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진화론이나 자연선택설, 성 선택설 등이 반드시 효율적인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인간은 물론 다양한 동물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그렇다면 부피가 커진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왔을까. 극적 반전이 여기서 시작된다. 저자에 따르면 뇌의 지나친 성장은 인간에게 지루함과 더불어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떠올린 것이 ‘내일’이란 개념이다. 과거와 현재만 있는 세계에서 ‘미래’를 발명해낸 것이다. 지금은 일상에서 수도 없이 주고받는 ‘내일 보자’라는 한마디가 인류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문장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5만8000년께 소말리아 반도에 살던 인류의 선조가 아프리카를 떠나 더 넓은 세계로 향한 것도 내일을 생각한 결과다. 이 책의 원제가 ‘The invention of tomorrow(내일의 발명)’인 이유다.

“다음날의 도래는 ‘가능한 것’, 가상의 것, 상상의 세계, 현실이 아닌 픽션의 세계, 아직 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의 도래로 이어졌다. (중략) 모든 것을 각기 다른 여러 방식으로 할 수 있음을 발견하면서 우리 뇌를 구성하는 150억 개의 뉴런은 ‘창의적’이라는 질풍에 휩싸였고, 그 뉴런의 소유주들은 만성적인 불편함에 시달리게 됐다.”

내일이라는 미래 개념은 인류에게 공포와 기대의 양면으로 다가왔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불안과 공포를 초래했고, 인간은 이를 이겨내기 위해 준비와 계획을 도입했다. 그 결과 필요 이상으로 다양한 것을 만들고 축적한 결과 불편함에 직면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 불편함이란 ‘과잉’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게 하는 것이 내일에 대한 생각과 그로 인한 과잉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필요 이상으로 커진 뇌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뭔가를 생산한다. 특히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은 뇌로 하여금 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도록 부추긴다. 생활은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지를 놓고 뭘 골라야 할지 고민하며 만성적 불안을 안고 살게 됐다. 바로 ‘내일 중독’ ‘미래중독’이다. 그런 점에서 ‘내일’이란 인류에게 내려진 최고의 축복이자 저주다.

그렇다고 인간만의 특권인 내일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내일이라는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들어 있는 것은 환상, 불안, 초조함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진화생물학은 물론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철학, 문학 등을 넘나드는 이야기 전개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때론 산만해서 논지에 바로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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