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문화부 기자) 바람의 움직임. 작고 가벼운듯 하더니 곧 광풍을 일으키며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그가 ‘바람’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베를린필하모닉을 이끌 차기 수장 키릴 페트렌코의 지휘 얘기인데요. 그가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첫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페트렌코는 이날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와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선보였는데요. 그는 악보의 모든 음표와 기호를 온몸을 움직여가며 표현, 오케스트라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때론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처럼 움직였고 말러의 고뇌를 한번에 쏟아내듯 거칠게 휘몰아쳤죠. 힘을 주며 손짓을 하는 순간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소리가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될 정도였죠.
소통의 스킬도 뛰어났습니다. 정확하게 해당 부분의 단원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듯 표정을 지었습니다. 또 마치 피아노 건반을 치는 듯 손가락을 미세하게 움직이며 음을 맞춰나갔습니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에 디테일까지 갖춘 그의 모습에서 ‘궁극의 지휘’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가장 비싼 R석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만석이었습니다. 그만큼 사이먼 래틀의 뒤를 이어 베를린필을 이끌 차기 지휘자에 대해 관심이 높았던 것이죠. 또 페트렌코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요. 그는 인터뷰도 하지 않고, 월드 투어도 거의 갖지 않아 베일에 싸여 있었습니다. 지휘 자체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요. 혹독할 정도의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며 준비가 덜 되었다 싶으면 스케줄도 과감히 취소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페트렌코는 차갑거나 괴짜의 모습을 한 천재일 것이란 추측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날 공연에서 본 그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함께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에겐 살짝 윙크까지 하고 웃어보이며 박자를 맞춰나갔습니다. 작은 키지만 팔과 다리를 쭉쭉 뻗어가며 발레 동작을 하는 듯한 그의 지휘는 앙증맞은 느낌도 줬죠. 게다가 공연이 끝나고 단원들을 파트별로 일으켜 세워 인사를 하게 하는 모습에서 리더로서의 배려도 돋보였습니다. 그의 지독하고 치열한 고민은 무대에 오르는 순간 하나의 바람이 되어 모두 날아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가 베를린필을 맡는 것은 2019년 9월부터입니다. 45세의 젊은 지휘자, 바람을 닮은 지휘자인 페트렌코가 이끌 새로운 베를린필의 미래가 정말 기대됩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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