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자극에 노출, 잔혹해지는 아이들
무한경쟁 강요하는 교육시스템도 문제
소년법 타령 말고 어른들부터 변화해야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다니! 무릎 꿇은 여중생은 말 그대로 피투성이였다. 분노와 함께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올봄 17세 소녀의 초등학생 유괴 살해 사건으로 놀란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인데 말이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변했을까?
이 끔찍한 현실을 극복할 대책이 필요해 보였다. 비정상적인 폭력성과 잔인성의 원인을 분석하고 근본적 해법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길 기대했다. 그런데 여론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원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소년법 폐지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과연 아이들을 엄하게 다스리기만 하면 이 잔혹함은 사라질 것인가?
청소년들은 왜 점점 잔혹해지고 있을까. 생물학적인 변화가 원인일 수 있다. 과거보다 빨리 성숙해지고 강해진 육체는 잔인한 폭력성에 일부 관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심리적 문제를 원인으로 꼽는다. 폭력적인 장면에 너무 많이 노출된다. 영화나 뉴스에서는 잔인한 범죄 장면이 거리낌 없이 표현된다.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면 점수와 보상을 주는 온라인 게임이 인기다. 이종격투기, 인터넷 개인방송, 웹툰 또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이 봐도 섬뜩한 장면이 너무 많다. 이런 폭력적 자극이 어떻게 심리적으로 잔혹한 아이를 만들 수 있을까? 첫째, 흉내를 낸다. 주먹 좀 쓰는 슈퍼히어로를 흉내내던 어린 시절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둘째, 잦은 폭력 장면에 노출되면 내성이 생긴다. 처음에는 피만 튀어도 무서웠던 것이 나중에는 목이 잘려도 시큰둥하게 된다. 셋째, 폭력의 결과를 비현실적으로 예측한다. 현실세계에서 남을 해하면 큰 벌을 받게 되지만, 영화나 게임에서는 그런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더구나 아이들의 뇌는 유약하다. 지속적인 변화는 대뇌시스템을 영구히 바꿔버릴 수도 있다.
교육시스템도 문제다. 비교적 청소년 범죄가 적은 대만에서는 아이들에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 그리고 범법행동으로 인한 불행한 결과에 책임을 지도록 하는 교육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우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삶이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 청소년의 우울증은 세계 최고다. 워낙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분노가 쌓이고, 그 화살이 나를 향하면 우울증이 된다. 분노가 강할수록 파괴력은 강력해져 스스로를 해치기도 한다. 자살만큼 잔혹한 일도 없다.
아이들의 잔혹성 원인으로는 또 다른 중요한, 어쩌면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있는데,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잔인한 폭력 장면과 비인간적 교육시스템은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반성도 없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소년법 폐지 주장이 들끓자 기성 언론과 정치권은 마치 보복과도 같은 소년법 폐지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반대 여론도 적지 않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폐지를 용인할 기세다. 만약 소년법이 폐지되고 아이들의 잔혹성이 줄어든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가능할까? 아니,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북유럽국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자기 집보다 더 좋은 형무소 환경,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직업교육, 교도관과의 친화적 환경 등 처벌보다 인간적인 삶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재범 방지와 교정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지 않는가. 처벌만 강화된 해결책은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할 뿐이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에게 더 엄중한 책임을 묻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철저한 원인 분석 없는 섣부른 해법과 장기적이지 못한 근시안적 대책이 걱정이다. 폭력에의 노출은 좀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로 막아야 한다. 인간적인 삶을 지향하는 교육시스템으로 변화시켜 자살을 부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경감시켜줘야 한다. 어른들의 변화부터 시작해야 옳다. 우리의 잘못을 그들에게 책임지우려 하는 만큼 잔혹한 짓은 없으니까 말이다.
김진세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