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너무 다른 프랑스 노동개혁

입력 2017-09-13 18:03
(1) 집권하자마자 노조 설득
(2) 노사정 아닌 정부가 주도
(3) 지지율 떨어져도 밀어붙여

노조 철밥통 깨는 마크롱…"개혁에서 후퇴하는 게 더 큰 리스크"
저성장·고실업 '프랑스병' 수술대에 올려
노동개혁 처방전에 국민 절반 이상이 찬성
1, 3위 노조 파업 불참…반개혁 동력 약화


[ 이상은/심은지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거침 없는 노동개혁에 세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정부가 주도하며, 지지율이 떨어져도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결기’가 동력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유럽연합(EU) 내 주요국 가운데 대량 실업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나라는 프랑스뿐”이라며 노동개혁안을 발표했다. 경제성장률이 1%대를 맴돌고, 청년실업률이 20%대 아래로 떨어지지 않자 배수진을 쳤다.


그가 내건 노동개혁안의 핵심은 노조 기득권 약화와 고용 유연성이다. 지난 5월14일 취임한 직후 노조 관계자들과 회동하며 개혁 필요성을 설득했다. 300시간에 걸쳐 노조 측 목소리를 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소모적인 노사정위원회 협의와 지루한 의회 논쟁을 거치기보다 행정부가 단독으로 ‘법률명령’을 발동하는 방식으로 속전속결을 택했다.

그는 노조가 총파업으로 위협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게으름뱅이, 냉소주의자, 극단주의자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며 ‘프랑스병(病)’ 치유를 호소했다. 60%를 넘던 국정수행 지지율이 최근 30%까지 하락했어도 개의치 않았다.

프랑스 노조가 12일(현지시간) 파업을 벌였지만 참가자는 20여만 명으로 과거에 미치지 못했다. 현지 언론 대부분은 ‘마크롱의 노동개혁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보도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해고요건 완화정책 폐기 등 지지 기반인 노동계에 치우친 한국과는 180도 다른 개혁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 말 30%(유고브프랑스 조사 기준)까지 떨어졌다. 국방예산을 강제로 대폭 삭감하는 과정에서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과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마크롱이 그리스 신화의 주피터처럼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졌다.

그런데도 놀라운 점은 강력한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국민 인식이 절반 이상(52%·오독사 조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13일 프랑스2 방송에 출연해 “프랑스 국민이 우리에게 국가를 개조하고 행동에 나서라고 요구했다”며 정면돌파 의지를 밝힌 것은 이런 지지 여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때와는 프랑스 사회의 반응이 다르다. 프랑스 언론사 RFI는 12일(현지시간) 총파업 지지율(57%)이 지난해(65%)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취임 직후부터 속전속결

그런 변화의 배경으론 세 가지가 꼽힌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노동개혁을 부르짖었다. 지난 5월14일 취임한 이후 열흘도 지나지 않아 대표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잇달아 직접 만나며 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나섰다.

정식 입법 대신 ‘법률명령(ordonnances)’이라는 편법을 써서 개혁안을 발효시키려는 것도 의회에서 논란이 길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6월 총선에서 마크롱이 창당한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 소속 정치인이 대거 당선돼 의회를 장악한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오는 22일까지 개혁안이 내각 동의를 얻어 이달 말까지 발효될 것이라고 밝혔다.

극좌파로 분류되는 장뤼크 멜랑숑 프랑스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대표는 이를 두고 “사회적 쿠데타”라고 거칠게 비난했다. 하지만 여론이 마크롱 편에 서는 한 멜랑숑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는 23일 또 다른 파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12일 파업을 주도한 프랑스 2위 노동단체 노동총동맹(CGT)조차 특정 정파의 파업이라는 이유로 불참을 선언해 큰 파급력은 없을 전망이다.

◆지루한 협상 관행 탈피

노동계와 사용자단체 등이 참여해 오랜 기간 협상을 벌이던 관행과 달리 정부가 힘있게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노동계 출신에게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겨 노동정책을 결정하려는 한국과는 다른 방향이다.

식품회사 다논 출신 뮈리엘 페니코 노동장관은 노사정위를 여는 대신 지난 여름 동안 노동단체들과 300시간에 걸친 ‘협의(consultaion)’를 했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협상이 이 과정에서 이미 상당 부분 완료됐다.

그 결과 이번 총파업에 1, 3위 노동단체인 민주노동총동맹(CFDT)과 노동자의힘(FO)은 참여하지 않았다. 노동개혁 내용에 100% 찬성하진 않더라도 파업에 나서 마크롱의 발목을 잡을 생각은 없다는 소극적인 용인 신호다.

◆지지율 하락에도 ‘뚝심’

마크롱 대통령은 지지율이 떨어져도 노동개혁을 밀고 나가고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op에 따르면 취임 직후 62%로 출발해 한때 64%에 이르렀던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8월26일 40%로 떨어졌다. 유고브프랑스(30%)를 비롯한 다른 조사결과는 40%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개의치 않고 있다. 개혁을 위한 발언 수위도 낮추지 않았다. 되레 물러설 생각이 없음을 강하게 표시하고 있다. 유럽 전체적인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독일 등과 달리 여전히 실업률(7월 기준 9.5%)이 높은 수준이고, 특히 청년실업률이 23.4%에 이르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기업이 비즈니스할 수 있게 숨통을 터줘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겠다는 태도 자체가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Ifop 소속 제롬 포르케는 “그것이 마크롱 스타일”이라며 “그는 물러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다. 그게 리스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상은/심은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