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입점업체 피해엔 "나중에 협의하자"
재입찰해도 10년 불과…재임대도 불가능
백화점·마트 운영 시 투자비 회수 버거워
[ 류시훈 기자 ]
정부가 서울역사와 영등포역사의 상업시설을 오는 12월31일까지 국가에 귀속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서울역의 롯데마트, 영등포역의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 등 유통시설에 큰 혼란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들 점포에 입점한 협력업체와 임대매장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길게는 30년간 운영해온 사업을 접어야 할 처지가 됐다. 4000명에 달하는 매장 종사자의 일자리가 위태로워지고, 투자했던 시설도 모두 국가에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민자역사가 국가에 귀속되면 국가재정법을 적용받는다. 재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더라도 임대기간은 최장 10년에 불과하다. 법적으로 재임대가 불가능해 지금과 같은 방식의 백화점 영업은 어렵다는 게 유통업계의 설명이다. 서울역 상권과 영등포 상권의 급격한 쇠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대량 실직 사태 오나
서울역사의 롯데마트, 영등포역의 롯데백화점 등에는 약 4000명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롯데그룹에 소속된 직원은 500명 안팎이다. 나머지는 모두 입점업체 판매사원과 임대매장 종사자들이다. 정부 방침이 알려지자 이들 입점업체 직원들은 “10년 이상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결정해 버리면 거리로 나가란 얘기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영등포 롯데백화점과 연결된 롯데시네마동의 3층 일부를 임차해 미용실 ‘이가자 헤어비스’를 운영 중인 김영만 원장은 “작년에 리뉴얼 공사에 3억원을 투자했다”며 “아무 얘기가 없어 롯데가 계속 운영할 걸로 생각하고 대출받아 투자했는데 나처럼 임차로 들어와 장사하는 사람들이 입을 피해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냐”고 울분을 삼켰다. 이용객에게 판매한 선불이용권 잔액도 영업을 계속 못하게 되면 갚을 방법이 없다고 푸념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는 이·미용실을 비롯해 10층 식당가의 10여 곳 등 수십 개 매장이 비슷한 처지다.
입점업체 판매사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정육코너에서 1998년부터 근무하고 있는 변혜숙 매니저는 “1991년부터 인연을 맺은 이곳은 내 삶의 전부와 같다”며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수백 명의 단골 고객을 잃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량 실직과 입점업체의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정부는 국가귀속이란 원칙만 던졌을 뿐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3일 열린 간담회에서도 “나중에 협의할 사안”이라며 수천 명의 생계가 걸린 문제 해법을 또다시 뒤로 미뤘다.
◆“백화점 영업은 사실상 어려워”
서울역사와 영등포역사 내 상업시설이 국가에 귀속되면 국유재산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까다로운 제약조건 때문에 정부가 경쟁입찰을 통해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하더라도 지금처럼 상권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게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국가에 귀속되면 우선 임대 기간이 5년으로 대폭 줄어든다. 한 차례 연장해도 최장 10년이다. 투자비 회수도 버거운 10년이란 기간을 보고 백화점과 마트 등 대형 시설을 운영할 회사는 거의 없다. 더 큰 제약은 재임대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업자가 모두 직영을 해야 한다. 백화점은 통상 전체 매장의 약 20%를 임대매장으로 채운다. 국가 귀속으로 지금과 같은 영업방식은 불가능해진다.
서울역사를 운영하는 한화가 롯데에 통째로 재임대해 영업 중인 서울역 롯데마트도 매장을 비워줄 수밖에 없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전국 롯데마트 중 매출 1~2위를 다투는 점포다. 요즘도 밤엔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객이 한국 상품을 상자째 구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A사 관계자는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는 백화점이나 마트를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다른 사업자 선정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롯데를 제외한 다른 유통사들은 서울역사와 영등포역사 인근에 기존 점포가 있거나, 향후 여의도에 대형 백화점 출점을 추진 중이라는 이유로 새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 참여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번에 원상회복 결정을 통보받은 동인천역사는 시설물을 철거해야 한다. 동인천역은 과거 인천백화점 등 대규모 상업시설로 쓰였지만, 지금은 영업이 어려워져 사실상 방치돼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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