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전문가 진단] 유엔 안보리서 드러난 ‘미·중·러 삼각 셈법’

입력 2017-09-12 15:33
수정 2017-09-12 15:40
신각수 국제법센터 소장 “결의안 이행 책임 강제조항 없어”
김현욱 교수 “미국, 중국에 ‘큰 선물’ 줬을 듯”
신상진 교수 “중국 기조 변치 않을 것”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 “러시아, 북한 통해 존재감 재각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11일(현지시간)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한 신규 대북제재 결의안 2375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대북 원유수출 전면 금지가 관철되지 못했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사실상 ‘전범(戰犯)’으로 규정해 자산동결을 비롯한 제재 조치를 하려다 결국 무산됐다.

외교 전문가들은 12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도출과정에 대해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정부가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이해 관계에 대해 좀 더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긴급 진단에선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 한·미 관계 분야 전문가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중국 분석가 신상진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 이명박 정부 당시 6자회담 수석대표였던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의 의견을 각각 들어봤다.

신각수 국제법센터 소장(사진)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은 국제법상 법적 효력이 있지만, 결의안 이행 책임을 강제하는 조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 안보리는 세계 안보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지는 기관이기 때문에 안보리에서 채택되는 결의안은 국제법상 효력이 있으며, 유엔 회원국의 행동 기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가를 심판할 수 있는 초국가적 사법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 국가에 이행 여부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단 건 불가능하다”며 “이른바 ‘P5’라 불리는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을 중심으로 도의적 책임을 강력히 따지는 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특정 테마가 안보리에서 정식 표결에 부쳐진단 건 이미 상임이사국들 간의 물밑 교섭이 끝났다는 의미”라며 “한국이 표면적으로 안보리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안보리의 ‘블루 텍스트(Blue Text, 최종안)’를 내놓는 과정에서 한국의 의지가 가능한 한 많이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은 현재 지렛대로 삼을 만한 국가 관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며 “미국의 경우 한·미 동맹을 강조하지만 내부적으로 곳곳에서 균열을 보이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경우 한국과 사이가 그리 좋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욱 교수(사진)는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을 보면 미국이 뭔가 보답 차원에서 중국 쪽에 ‘큰 선물’을 줬을 것 같다”며 “만일 그것이 맞다면 무역 분야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그는 “유엔 안보리는 북한을 막을 힘이 없으며, 각국이 협력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무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래도 유엔 안보리는 글로벌 질서 유지의 선봉장이란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유엔 안보리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유엔 안보리는 철저히 P5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국정부로선 현재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며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에 떠밀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딱히 뾰족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자체적으로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했다. 또 “이럴 때일수록 한국이 미국에 강한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일관성있는 대북노선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상진 교수는 “중국이 이번엔 대북제재 강화에 손을 들어줬지만, 기본적인 대북정책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안보리의 대북제재 최종 결의안이 미국의 초안에 비해 상당 부분 후퇴한 건 중국의 입김이 결정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으로선 중국, 러시아와 전면적으로 맞서는 것보다 대북제재 공조 제스처를 연출하는 게 더욱 절실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한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은 중국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에서 완전히 손을 떼리란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부정했다. 신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미국과 맞닿지 않게 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북한을 적국으로 돌려서 좋을 게 없다”며 “중국 차원의 단독 제재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예측했다.

위성락 전 대사는 “러시아는 북핵 문제가 P5 일원으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과시한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위 전 대사는 “러시아는 과거 냉전 시절부터 유엔 안보리에서 미국과 워낙 많이 대립했기 때문에 안보리의 주요 테마를 매우 정교하게 처리하는 외교술을 갖췄다”며 “이번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도출 과정에서도 미국이 러시아를 설득하는 데 꽤 고전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 제재안은 비록 당초 기대치엔 못 미치더라도 예전보단 진일보한 새 기준을 마련했다고 본다”며 “앞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이 결의안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지에 더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미국이 왜 9월 11일이란 날짜를 정하고 마치 배수진을 치듯 표결을 밀어붙였는지 의문”이라며 “미국이 그토록 서두른 이유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핵 비확산 차원에서 북한 비핵화에 찬성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 자국 입지를 굳히기 위해 남북 관계를 다룰 때 한국과 적정 거리를 두려 한다”며 “한국으로선 상당히 어려운 외교 파트너”라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