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지식사회부장 kecorep@hankyung.com
[ 백광엽 기자 ] 인류는 오랜 기간 ‘인간다움’의 상징을 ‘정신’에서 찾았다. 육체는 경시했다. 19세기 초입이 돼서야 ‘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몸의 가치를 발견한 선구자는 ‘전통의 파괴자’ 니체였다. ‘정신은 작은 이성이고, 육체는 큰 이성’이라는 게 니체의 자각이었다. 그는 육체와 정신이 별개가 아니며, 몸의 쇠락은 필연적으로 정신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봤다.
논란 자초하는 승부사 기질
20세기에 만개한 민주주의가 ‘신체의 자유’를 자유권의 핵심으로 상정한 데는 이런 인식의 전환이 깔려 있다. 함부로 인신을 구속당하지 않을 자유는 이제 사유재산권과 함께 민주사회의 핵심 원리가 됐다. 개인 신체권의 확립 과정은 곧 인권의 역사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앙지검이 영장 기각에 반발해 담당 판사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은 우려스러운 사태다. 반(反)인권적이자 역사의 퇴행이다. 인권과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가 파격 발탁한 윤석열 지검장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더 크다.
‘합법적 물리력의 독점체’인 국가 권력을 상대하는 나약한 개인에게 신체의 자유는 필수불가결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이다. 인신 구속을 통한 강제 수사는 언제나 보충적 수단이어야 한다는 게 근대사법이 확립한 기본 원칙이다. 이번 비난 성명에 정유라 우병우 등의 영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도 없다. ‘법원 때문에 못 해 먹겠다’는 식의 날선 감정만 가득하다. 특정 판사들을 콕 집어 인신공격하는 태도 역시 나가도 너무 나갔다. 우리가 정의의 대변자이고, 도와주지 않는 법원은 ‘부정의’라는 오만에서는 음습한 기운마저 감지된다.
이번 사태는 늘 논쟁을 몰고 다니는 ‘윤석열 스타일’의 재확인이다. 그는 주변 시선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진짜 ‘강골 검사’다. 돌이켜보면 파열음조차 상당 부분 의도되고 계산된 행보다. 그러다 보니 소영웅주의라는 시각과 함께 부작용도 나온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이 저돌적인 윤석열 스타일에 휘말려 고초를 겪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포함해 3년간 ‘5심’의 법정투쟁 끝에 두 사람은 2009년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래도 상처는 회복 불능이다.
좋게 말하면 선굵은, 나쁘게 말하면 듬성듬성한 법리구성도 윤석열 스타일이다. 지난달 경찰 호위 속에 법정 출석하는 박영수 특별검사를 향해 50대 여성이 멀찍이서 작은 생수병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해프닝성이었지만 그는 ‘사법질서에 도전하는 중대범죄’라는 프레임을 들이댔다. 이번 성명에 영장 기각 사유 ‘납득 불가’ 사례로도 적시했다. 계좌 추적, 배후 색출 운운하는 검찰의 과잉 대응이야말로 납득 불가라는 비판이 만만찮다.
"우리가 정의" …독선 논란
윤석열 스타일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여론에 기대는 모습이다. 판사들을 비난할 때도 ‘시중의 의구심이 있다’며 여론을 끌어들였다. 그렇잖아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여론 법정’의 공간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시대다. 여론의 세계는 ‘유죄추정의 원칙’에 지배된다. 자칫 까다로운 대중의 입맛과 실체적 진실 사이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윤석열호(號)는 적폐 청산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유일한 정의라고 보는 듯하다. 사법질서 속에서 그 정당성을 검증받는 것조차 거부할 만큼 자신만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정의다’라는 식의 동어반복적 주장은 거슬린다. 윤석열 스타일은 새 정부의 날개가 될까, 족쇄가 될까. 시선집중이다.
백광엽 지식사회부장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