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선수 훈련비가 뇌물 되는 올림픽 개최국

입력 2017-09-10 18:41
"대기업이 지원 나선 76년부터 한국 올림픽 메달 급증
승마를 지원한 삼성…서구 상류사회 휴대폰 홍보 기대
훈련비 지원을 뇌물로 처벌…스포츠 강국 위상 허물어선 안돼"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의 유고는 보수와 진보의 구성비가 박빙인 미국 사법부의 중대사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30년간 재임한 엔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작년 2월 잠자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총기 소지와 사형제 존치를 옹호하고 동성애와 낙태를 반대하던 강경 보수 대법관이 사망하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후임 지명을 서둘렀으나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 견제로 지연됐고, 새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권을 행사함으로써 5 대 4의 보수 우위가 그대로 유지됐다.

이탈리아계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스캘리아는 아홉 명의 자녀를 뒀는데 사제인 아들 폴이 장례미사를 집전했다. 폴은 대법관의 무거운 직책을 맡으면서도 매우 자상한 아버지였음을 소개하면서 고해성사 관련 일화를 공개했다. 하루는 자신의 고해성사 줄에 아버지가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는데 끝까지 입장하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아들 방인지 모르고 섰다가 깜짝 놀라 다른 방으로 옮겼다며 웃더라는 것이다. 판결을 내릴 때마다 고뇌하던 아버지를 늘 지켜봤다며 망인(亡人)의 아들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재판으로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강론을 마쳤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 전 사장에 대해 1심 법원은 뇌물공여죄 등을 적용해 실형을 선고했다. 피고인과 특검 모두 항소해 2심 재판이 열린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배분한 공익재단 출연금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승마선수 훈련비와 영재센터 지원금이 뇌물로 인정됐다. 승마 훈련지가 독일이어서 외화도피 혐의도 추가됐다.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에서 한국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한 1976년부터 대기업이 올림픽 종목을 나눠 맡아 지원했다. 메달 획득이 대폭 늘었고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1988년 하계올림픽을 열었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도 개최한다. 하필 이 시점에 체육 관련 인사들이 대거 연루된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했고 세계인이 주목하는 형사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훈련비 지원을 받은 정유라는 2014년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다. 승마는 고가의 말 구입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비싼 종목이다. 유럽과 미국 상류사회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최고급 휴대폰으로 경쟁하는 삼성전자로서는 훈련비 지원이 메달로 연결되면 홍보효과가 크다. 필자는 대학 체육위원장을 맡아 선수 훈련비 모금에 매달린 경험이 있다. 성과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으로 남는 일도 있다.

당시 고(故) 조오련 선수의 차남 조성모가 수영 특기생으로 재학 중이었다. 조성모는 2002년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로서 주요 국제 대회에서 다수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루는 그가 스모 선수 몸매로 변신해 연구실에 나타났다. 깜짝 놀라 사연을 물으니 박태환이라는 고교생 스타가 등장해 자신에 대한 수영협회 지원이 끊겼는데 아버지가 항의의 뜻으로 자신과 교대로 대한해협을 횡단할 예정이어서 차가운 바닷물을 견디기 위해 뱃살을 늘렸다는 것이다. 다급히 훈련비 경비를 뽑아봤더니 호주 수영장 이용료와 코치 수당 등이 엄청났다. 대학 자체로는 조달이 불가능했고 조성모는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단체종목 훈련비도 엄청나다. 야구는 겨울에는 따뜻한 괌이나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보내야 한다. 귀국 인사차 찾아온 선수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손바닥이 말발굽처럼 두텁고 곳곳이 상처투성이다. 선수 훈련비가 뇌물로 보이면 야구 3할 타자의 손을 잡아봐야 한다. 축구 선수의 너덜거리는 엄지발톱과 농구선수 발목에 칭칭 둘러맨 테이핑도 확인해야 한다. 지원하는 회사에서 영수증을 일일이 챙기는데 누가 훈련비로 축재한다고 뇌물로 몰아가는지 알 수 없다. 선수 훈련과 향응을 뇌물 반열에 함께 올리는 것은 참으로 부당하다.

공직자는 강요죄를, 기업은 뇌물공여와 횡령·배임의 올가미를 걱정하는 상황에서 기업 후원이 필수적인 평창동계올림픽이 제대로 열릴지 걱정이다. 국제대회 메달 획득 급감과 한국 스포츠 위상 급락이 불을 보듯 뻔하다. 오랜 관행인 선수 훈련비 지원을 갑자기 뇌물로 처벌함으로써 공들여 쌓아올린 스포츠 강국 위상을 한꺼번에 허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