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Style] 가방보다 신발…명품에 '발' 들여놓다

입력 2017-09-08 19:48
'가성비' 시대…명품 브랜드 효자된 신발


[ 민지혜 기자 ] 500만원이 넘는 명품 백, 1000만원짜리 명품 코트. 일반 직장인이 선뜻 지갑을 열기 힘든 가격대다. 소비시장에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과거와 같이 고가 명품을 턱턱 집는 소비자는 줄고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이런 흐름 속에 찾은 대안이 신발이다. 수십만원에서 100만원 정도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 켤레 정도는 명품 신발을 갖고 싶어하는 수요를 창출하려는 전략이다. 소비자들도 몇십만원짜리 신발에 대한 저항은 덜한 편이다. 슬립온이라고 부르는 캐주얼 신발, 슬리퍼처럼 꺾어 신는 구두 등은 명품 브랜드가 트렌드를 주도할 정도라는 평가도 나온다.

신상 나오자마자 ‘품절’

발렌시아가는 올가을·겨울 신제품 패션쇼에서 남성용 스니커즈 ‘트리플 S’를 처음 공개했다. 이 신발은 매장 판매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선주문(프리오더)으로 이미 품절됐다. 러닝화 농구화 트레킹화를 섞어 놓은 듯한 굽 모양, 여러 가지 색을 섞어 독특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가격은 94만원. 정장 차림에 스니커즈를 신는 패션이 보편화되면서 20대는 물론 30~40대도 명품 브랜드 스니커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품절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발렌시아가는 출시하기도 전에 이 신발이 품절되자 여성용 스니커즈도 내놓기로 했다.

프라다가 이달 초 출시한 ‘클라우드버스트 스니커즈’도 인기몰이 중이다. 국내에 들어오기도 전에 매장에 구입 문의가 쇄도했다. 곡선 형태 디자인, 적당한 두께의 굽, 파스텔톤의 은은함이 어우러져 여성적인 분위기를 낸다. 90만원대에 판매한다. 루이비통의 신제품 ‘보이시’ 앵클 부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루이비통 고유의 모노그램 캔버스와 소가죽을 같이 사용했다. 가격은 169만원.

국내에서도 명품 신발을 사는 수요가 급증하자 백화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은 서울 본점에 알렉산더 맥퀸 매장을 열고, 부산 본점에선 겐조 의류 매장과 신발 매장을 분리하기로 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올해 1~7월까지 롯데백화점에서 판매된 명품 브랜드의 신발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며 “너무 비싼 제품은 못 사지만 100만원 안팎 신발 한 켤레쯤 명품 제품을 장만하려는 젊은 소비자가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구찌, 신발로 명품시장의 강자로

구찌는 신발 시장에서 강자로 급부상한 브랜드로 꼽힌다. 알레산드로 미켈레 크리에이티브디렉터가 2015년 가을에 내놓은 뒤축 없는 슬리퍼 형태의 구두 ‘블로퍼’는 세계적으로 구찌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 이후 이 신발은 ‘바부슈’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마다 내놓는 인기 제품군으로 자리잡았다.

꾸준히 인기를 끄는 구찌의 신발로는 ‘에이스 스니커즈’와 ‘프린스 타운’이 있다. 흰색 가죽, 나파 실크 등 다양한 소재로도 나온다. 벌, 번개, 불꽃, 입술, 하트, 파인애플, 꽃 등 튀는 그래픽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원하는 디자인의 패치를 골라 붙이면 나만의 스니커즈를 만들 수 있다. 에이스 가격대는 80만~100만원대. 프린스타운은 대표적인 바부슈 신발로, 단순한 기본 디자인부터 호랑이, 뱀 등을 넣은 화려한 제품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소재와 디자인에 따라 90만~200만원대에 판매한다. 구찌의 여성용 구두 ‘GG마몽’은 G 로고를 부착한 하이힐로, 뒷굽을 두껍게 제작했기 때문에 착화감이 좋은 제품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 강점으로 꼽힌다. 가격은 90만~100만원 정도다.

없어서 못 파는 명품 신발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이자벨 마랑의 스니커즈 ‘베스’와 ‘브라이스’도 대표적인 인기 신발이다. 올가을 나온 베스 신제품은 자수를 덧댔고 브라이스는 메탈릭 색상을 추가했다. 60만~70만원대 가죽 스니커즈라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피갈’ 펌프스는 아찔한 굽과 날씬한 구두 앞코 등으로 유행을 타지 않고 잘 팔리는 신발이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엘리스’는 마치 하이힐을 신은 것처럼 키를 커 보이게 해주는 통굽 신발로, 올가을 신제품이 입고되자마자 50% 이상이 팔려나갔다. 스텔라 매카트니가 자주 신고 다니는 블랙 색상, 메탈릭 실버 색상에 별 무늬를 넣은 신발은 올 상반기에 국내에서 품절됐다. 가격은 140만원대.

아크네 스튜디오의 ‘아드리아나’ 스니커즈, 메종 마르지엘라의 ‘타비’ 부츠, 겐조의 ‘무브’ 스니커즈도 인기 상품이다. 아드리아나는 웃고 있는 얼굴 모양 액세서리로 유명한 신발이다. 흰색과 메탈릭 실버의 인기가 가장 높다. 가격은 57만원대. 무브 스니커즈는 겐조 고유의 호랑이 무늬, 원색이 특징이다. 가격은 30만원대로 책정했다. 발가락을 두 갈래로 나눠 신는 구두인 타비 부츠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대표 상품 중 하나다. 블랙 색상은 올가을 입고 상품의 60% 이상이 팔렸다. 가격은 125만원대다.

신발이 효자가 되다

신발은 명품 브랜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딜로이트 글로벌의 ‘2016 명품 글로벌 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2015회계연도(2015년 7월~2016년 6월) 100대 명품 기업의 매출은 전년보다 3.6% 증가한 2220억달러(약 262조원)에 달했다. 가방 및 액세서리류가 9.3% 증가했고 두 번째로 성장률이 높은 게 의류 및 신발 매출(6.6%)이었다. 올해 2분기에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열 개 제품 중 여섯 개가 신발이었다. 영국 패션전문지 비즈니스오브패션(BoF)에 따르면 베스트셀러 열개 상품 중 구찌 슬립온과 슬리퍼, 생로랑의 펌프스, 지방시의 슬리퍼, 콤데가르송과 커먼프로젝트의 스니커즈 등 여섯 개가 신발이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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