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큰 정부보다 효율적인 정부여야

입력 2017-09-07 18:31
시장실패 탓하면서 개입 늘리는 정부
일자리·복지라면 기업활동 뒷받침하고
규제 풀어 시장이 제기능 발휘토록 해야

최종찬 <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전 건설교통부 장관 >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정책 기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역대 정부가 주장하던 기업 여건 개선 소리는 별로 없고 소득주도 성장, 재정 확대 등 경제정책에서 정부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예컨대 최저임금을 올리고 공공 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며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무원과 공기업 증원을 추진한다. 지난 정부가 강조하던 노동시장 유연성이나 규제 완화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경제정책에서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영향을 받아 규제 완화, 개방화, 민영화 등 정부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 기능을 강조했는데, 그 결과 일자리 창출도 제대로 안 되고 소득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 기능 위주의 정책은 한계가 있으므로 산업·금융·노동정책 등에서 정부 개입을 늘리고 재정 규모도 확대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성장의 ‘낙수효과’가 떨어지고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사실이다. 세계 각국이 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시장경제 위주의 경제 운용에서 비롯된 것인가? 또 규제를 강화하고 재정을 확대하는 등 정부가 나서면 시장 기능에 맡기는 것보다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기업, 대기업을 중심으로 정부 주도(?)하에 정규직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기업 처지에서는 정규직을 한 번 채용하면 기업이 어려워져도 구조조정을 하기 힘들어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정규직 채용을 강요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대폭 늘어나 자동화를 가속화하고 해외 이전을 추진하거나 신규 채용을 줄일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현재도 경영이 어려운 수많은 영세 자영업자의 도산을 초래하거나 아르바이트생 등의 고용을 줄일 것이다. 이미 일부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축소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은 규제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업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주택 전·월세 가격이 올라간다고 전·월세 상한제, 임대차 기간 연장 등이 검토된다. 하지만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전·월세 가격이 안정되려면 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야 한다. 전·월세 가격을 규제하고 임대조건을 까다롭게 하면 임대주택 공급은 줄어들 것이다. 임대주택 공급이 줄면 전·월세가 안정될 수 없다. 이처럼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문제를 더 어렵게 한다.

일자리 확대와 경제 양극화 해소란 명분으로 복지 지출을 급격히 확대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사회 안전망 등은 늘려야 한다. 그러나 재원 조달 가능성을 감안해 늘려야 한다. 최근 4년간 총세출 증가는 평균 4.1%인 데 비해 보건복지비 증가율은 7.5%다. 초저출산(출산율 1.3% 미만)이 17년째 지속되고, 2026년에 초고령국가(65세 이상이 20%) 진입이 전망되는 등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공무원 증원, 노령수당 등 복지제도는 한 번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 현 정부 5년 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쉽게 도입할 일은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의하면 현 추세가 지속되면 2030년 초반 한국의 복지 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능가할 전망이다. 일본도 현재는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0% 수준으로 세계에서 재정 상태가 가장 불량한 국가지만, 고령인구가 현재의 한국과 비슷했던(65세 이상이 14%) 1990년대에는 국가 부채가 60%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우리 국가 부채 비율이 낮다(40%)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 재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왕성한 기업 활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원격진료, 케이블카 설치, 바이오, 드론(무인 항공기) 등 신산업에 대한 규제만 풀어도 일자리는 많이 늘어날 것이다. 고용유발효과가 큰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기본법은 수년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시장 기능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또한 만능이 아니다. 정부는 시장 기능이 잘 작동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독과점 등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분야에 한해 개입해야 한다. 큰 정부가 되기 전에 효율적인 정부가 돼야 한다. 기업인이 정치인이나 공무원 눈치 보는 나라가 돼서는 발전할 수 없다.

최종찬 <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전 건설교통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