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분식집 요리사로 변신한 25년 유기농 학사농장 대표

입력 2017-09-07 16:41
수정 2017-09-07 17:07

“저희는 유기농 채소만 쓰고요. 화학 첨가물 하나도 안 넣습니다. 계란은 전남 화순에서 뛰어놀며 자란 닭이 낳은 것을 납품 받고 있고, 참치캔도 직접 만든 것을 씁니다. 짜장면도 밀가루 대신 쌀로 만든 면으로 만들어요.”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 상가에 있는 작은 분식집 ‘김농부밥쉐프’. 지난달 중순 강용 대표는 김밥을 주문하러 들어온 소비자들에게 쉴새없이 유기농 식재료 자랑을 하고 있었다. 분식점 규모는 작다. 7개 테이블이 있다. 이 작은 곳에서 그는 때론 유기농 전도사로, 요리사로, 홀 서빙 직원으로 변신했다. 그는 “친환경 식재료로 어린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친환경 농업을 하는 학사농장의 대표다. 25년차 농부다. 친환경 식재료 판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전국 4만5000여개 친환경 농가가 가입돼있는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친환경 농산물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인 강 대표가 작은 분식집을 차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셰프가 된 농부’의 사연을 들어봤다.


◆스타농부의 고민, “친환경 농산물이 주류가 될 수는 없을까”

그는 잘나가는 청년 농부였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뒤 귀농이 대안으로 떠올랐을 무렵이다. 강 대표는 전남대를 졸업한 후 1992년 전남 장성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에 학사 학위가 있는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어요. 그때 인터뷰도 참 많이 했죠.”
그는 당시엔 생소한 개념인 ‘친환경 농사’를 지었다. “사실 농약 살 돈이 없어서 시작한 게 친환경 농사였어요. 마침 1994년쯤 인증제가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식품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고려하면 부가가치가 높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계속 친환경 농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학사농장은 한 때 6만6115㎡(약 2만평) 가량의 농장을 직접 운영했다. 수십 명의 농부들을 모아 친환경 농산물 판매장도 냈다. 이 농산물 매장은 프랜차이즈 형태로 확장해 전국 매장을 10여개까지 늘렸다.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들도 학사농장의 농산물을 받아갔다. “일이 술술 풀리니까 성공했나 싶었죠. 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 정도로는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환경 농산물 소비를 더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친환경 채소 축제인 유기데이(6월2일)에서 힌트를 얻었다. 1년에 한번 유기농산물을 배탈이 날 정도로 많이 먹어보자는 취지로 만든 행사였다. “첫 행사 때 소비자들이 1시간 동안 줄을 섰습니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먹고 가더라고요. 화려하지 않아도 깨끗하고 믿을만한 음식에 반응한다는 생각을 했죠. 소비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식재료가 아닌 음식을 파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외식 소비가 늘어난다는 점도 강 대표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식당들은 원가에 목숨을 걸잖아요. 외식이 늘어나면 값싼 수입 농산물 소비가 늘고, 국산 농산물과 친환경 농산물은 아예 설 자리가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식당들을 설득해 유기농 채소를 사용하도록 해볼까 했지만 쉽지 않았다. 역시 원가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직접 해보는 선택지만이 남았다. 그는 2006년 광주에 유기농 쌈밥집을 차렸다. 좋은 식재료가 있으니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두번의 실패를 통해 배운 것

하지만 실패였다. 식재료가 좋은 것과 식당을 잘 운영하는 것은 달랐다. 직원을 관리하는 것도 어려웠고 고객에게 서비스 마인드를 갖고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농장에서 진행한 유기데이에서 밥을 먹었던 사람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농장을 찾은 사람들이더라고요. ‘의미있는 농법을 하는 농장과 함께한다’, ‘현장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재미도 있다’ 등 음식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 거죠. 하지만 식당을 찾은 사람은 음식에만 집중합니다. 외형상 조그만 결함이라도 있는 채소는 먹고 싶지 않아했죠. 쉽지 않더라고요.”

그는 2년6개월만에 쌈밥집을 접었다. 그러나 외식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다. 두 번째 도전은 뷔페였다. 서비스 비중을 줄이고 양으로 승부했다. 고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뷔페는 항상 손님으로 가득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월말에 정산할 때면 고개가 갸우뚱해졌어요. 손님은 분명 많았는데 이익은 나지 않았습니다.” 뷔페식으로 대량으로 먹기엔 유기농 채소의 원가가 너무 비쌌던 게 문제였다. 두 번째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그는 쌈밥집에선 서비스의 중요성을, 뷔페에선 가격과 원가의 중요성을 배웠다. 세 번째 도전이 지난 달 문을 연 분식집 ‘김농부밥쉐프’다.

◆친환경을 저렴하게 먹자

그가 분식집을 차린 것은 모든 연령, 모든 계층에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1만원이 넘는 뷔페는 작정하고 와야 하지만 3000원 짜리 김밥은 그래도 쉽게 사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친환경 농산물이 무조건 높은 가격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평소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친환경 농산물이 대중화되지 않고 일부 고소득층만의 전유물로 남는다면 관련 산업은 성장할 수 없다”며 “분식집 김농부밥쉐프는 친환경 농산물 대중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단순해 보이는 분식이지만, 들어가는 식재료를 보면 단순하지 않다. 채소류는 학사농장 조합원들이 재배한 친환경 농산물을 쓰고, 계란은 전남 화순에서 자연방목해 키운 닭이 낳은 것만 고집한다.(당연히 이번 살충제 계란 사태에서도 무사했다). 참치캔도 새로 만들었다. 수은 함량이 낮은 어종을 골라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는 레시피를 개발했다.

강 대표가 이 식당에서 가장 자신있는 메뉴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받은 그는 대답 대신 모자와 앞치마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몇분 후 그는 짜장면 한그릇을 내왔다. 밀가루 대신 쌀로 만든 국수가 들어가고 춘장 대신 직접 개발한 짜장소스를 넣었다. “중국집 짜장면이 하루에 700만그릇이 팔린다는 기사를 봤어요. 만약 쌀짜장면이 그걸 대체할 수 있다면 우리 농업의 쌀 과잉생산 문제는 단숨에 해결될 거에요. 아침밥 먹자는 캠페인 해서 쌀 소비량이 늘었나요? 전혀 안 늘었어요. 그런데 쌀국수로 만든 짜장면과 잔치국수가 맛있다는 게 알려지기 시작하면 가능할 걸요. 농업의 변화는 농장에서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소비자에게서 시작되는 거죠. 그래서 말인데, 맛이 있나요?"

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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