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 소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 "'귀향'은 정공법, 우리는 우회적"
나문희 "배우로, 영화로 한몫 할 것 다짐"
'귀향'과는 결이 달랐다. 처음엔 유쾌한 터치로 관객의 마음을 열고, 결국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이야기다.
'아이 캔 스피크'는 2007년 미국 하원 공개 청문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사죄 촉구 결의안(HR121)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던 이야기를 휴먼 코미디라는 대중적인 틀 안에 녹였다.
이 영화는 앞서 개봉된 '귀향', '눈길'과 같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를 벗어나 위안부 피해자 옥분(나문희)의 진취적인 삶의 태도를 통해 발랄하게 전개한다.
이야기는 민원 건수만 무려 8000건, 구청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과 오직 원칙과 절차가 답이라 믿는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며 운명적으로 엮이게 되면서 시작된다. 민재와 옥분은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쌓고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지만 옥분은 혼자만 숨겨온 큰 비밀이 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
'아이 캔 스피크'는 현재를 살아가는 옥분의 입으로 위안부의 실상과 만행을 적나라하게 증언하며,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당긴다.
6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아이 캔 스피크' 언론시사회에서 김현석 감독은 "그동안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장르를 많이 했는데, 이 시나리오를 받고도 고만고만한 휴먼 코미디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중후반부를 읽고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영화 '쎄씨봉', '시라노:연애조작단', '광식이 동생 광태' 등 웃음과 감동을 담아내는 영화를 주로 해왔다. 그는 "10년 전 연출한 '스카우트'도 코미디지만 광주항생을 이야기 했다. '귀향'과 같이 위안부 소재를 정공법으로 다룬 영화가 있지만 우리는 우회적으로 다뤘다"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이어 "할머니를 옆에서 보는 우리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만들면서 평소 알던 것보다 더 알게 되니 두려웠다"라고 털어놨다.
또 "코미디로 가다가도 피할 수 없는 메시지가 있는데 물과 기름처럼 놀지 않고 오히려 관객이 편히 보다 뒷통수를 맞는, 몰랐다가 알게 되면 더 미안해하는 우리 모습을 연출하는데 고민이 많았다"고 연출 방향을 설명했다.
'수상한 그녀' 이후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나문희는 56년의 연기 인생의 관록을 '아이 캔 스피크'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 영화에서 모두가 피하는 '오지라퍼' 할머니면서 위안부 피해자 옥분 역을 연기한 나문희는 "이 나이에 주인공을 한다는 마음은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정말 내가 해냈다는 거, 노래까지 녹음하고는 아이고 이제 해냈구나 했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나문희는 평소 자신의 성격을 자신감 없고 소심하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가 이 영화를 택한 것은 도전이었다.
그는 "아는 것도 많지 않으니 누구 앞에서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대본을 받았을 때 '아이 캔 스피크, 나 말할 수 있다'라는 것 하나로 해방감을 가졌고, 나부터 이걸 치료해야겠다 싶었다"라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이어 "시나리오를 읽다보니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이고, 그 분들은 얼마나 지옥 속에서 머리 속에 얹어놓고 사셨을까 싶었다. 고사 지낼 때 배우로, 영화로 한몫 하겠다고 그랬다. 관객하고 만나봐야 알겠지만 현재는 어느정도로 만족한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옥분과 호흡을 맞추며 코미디부터 감동까지 남다른 케미를 자랑했던 민재 역은 배우 이제훈이 열연했다. 그는 사사건건 부딪히면서도 옥분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결국 마음을 열고, 아픈 과거를 오롯이 이해하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연기해 민재를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거듭나게 했다.
이제훈은 먼저 "나문희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함께 찍어 주셔서 너무 영광이었고,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에 나문희는 "우리끼리 이러면 너무 웃기죠?"라더니 "하지만 우리끼리는 너무 감사해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앞에서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을 보니 우리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나 손자처럼 선생님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선생님 옆에 있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또 "(나문희가 연기하는) 청문회장 신에서 영어 대사들이 상당히 긴데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거다. 많이 애써주셨다. 영화를 보는데 선생님의 노고와 많은 노력들이 묻어나왔다. 같이 찍으면서도 감동을 받았다"라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이제훈은 "영화가 추석 개봉으로 알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보시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며 "가슴 아픈 일을 겪으신 분들께 이 영화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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