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문화부 기자) 음의 본질이 노장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손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기교 섞인 여음은 그에게 필요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오직 본질만을 향해 갔죠. 베토벤이란 거장이 표현해 내고자 했던 음의 순수한 결정체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건반 위의 구도자(깨달음을 구하는 자)’란 그의 별명처럼 말이죠.
지난 1일 시작된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은 오는 8일까지 펼쳐집니다. 모두 32곡에 달하는 곡들을 하나씩 풀어놓는 그의 모습에선 마치 순례 길을 묵묵히 밟는 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1일 펼쳐진 첫날 공연에서 그의 연주는 피아노 소나타 20번으로 시작됐습니다. 처음 언뜻 보기엔 힘이 약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경쾌하긴 했지만 화려하진 않았죠. 소나타 1번으로 넘어가 깊고 강렬한 터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적인 표현력은 돋보였지만 부풀려진 느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그의 ‘의도된 간결함’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많은 기능을 갖춘 미국 스타인웨이사의 피아노를 치면서도 그 기능을 최소화하고 여음을 주지 않고 조용히 노래하듯 흘러갔다”며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베토벤이 추구했던 음악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주관적 해석이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피아노 소타나 15번 ‘전원’에서는 또다른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긴장과 이완의 조화가 한껏 어우러졌는데요. 찬란히 부서지듯 빛이 쏟아지더니 이내 담백하고 평온하게 선율이 흘러갔습니다. 71세의 피아니스트만이 가진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은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에서 가장 빛을 발했습니다. 장대한 스케일의 1악장에선 강렬한 폭풍 같은 터치를 선보이더니 2악장에선 처연하면서도 순수한 음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3악장에 이르러선 그의 빠르게 움직이는 손 사이로 이 대작을 최고의 연주로 완결짓고자 하는 노장의 의지가 엿보였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분명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듯 힘겨운 여정입니다.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목표이기도 하죠. 이 길을 묵묵히 떠난 71세의 피아니스트.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한걸음씩 걸음을 내딛는 거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여정은 오는 8일까지 계속되니, 많은 기대를 하고 공연장을 찾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끝) /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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