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사업계획 수립 '눈치'만
경영진 인사는 논의조차 안돼
"결정 필요 사안 아예 안 만든다"
[ 좌동욱 기자 ]
“제가 알고 있으면서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런 논의 자체가 없습니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삼성 계열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의 신성장동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감된 이후 삼성그룹 전체가 ‘결정 장애’를 앓고 있다고 탄식했다.
현상 유지만 근근이 할 뿐 △신규사업 투자 △핵심 인재 영입 △글로벌 전략 전환 △인수합병(M&A) 등 종합적 안목이 필요한 의사결정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계열사들의 공통 현안을 집중적으로 챙기던 미래전략실까지 사라지면서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다고 했다. 중간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비(非)전자 계열사의 한 부장은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하면 임원들이 거의 결정을 못한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아예 해답이 없을 것 같은 보고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년 9월부터 시작하는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도 아직 안갯속이다.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인 만큼 각자 알아서 결정해야 할 상황이지만 다들 눈치만 보는 분위기다. 목표 수립과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경영평가 시스템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앞으로 누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를 놓고 확인되지 않은 얘기만 분분하다.
고위 경영진 인사는 논의 자체가 없다. 삼성은 매년 12월 초 그룹 차원의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쓰러진 뒤 3년간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는 크게 줄었다. 매년 16~17명에 달하던 사장단 인사폭은 2014년 말 11명, 2015년 말 15명 등으로 줄어들더니 지난해 말엔 인사 자체를 건너뛰어 버렸다.
계열사 간 의사 소통이 막혀 있는 상황도 큰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삼성 금융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삼성페이와 같은 결제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삼성전자와 생명, 카드, 증권 등 금융계열사와의 협업이 필요하다”며 “실무자 단계에서만 이런 논의가 오갈 뿐 경영진 차원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들은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고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선 사장단협의회와 같은 과도기 조직이 필요하다”(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삼성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조직을 만들 경우 미래전략실을 부활시킨다는 비판이 날아올 것”이라며 “이런 안건을 논의하거나 결정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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